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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Life/책거리: 고전

조르주 페렉 <사물들> - 자본주의와 인사하기

by Feverish 2011. 9. 18.

 

조르주 페렉 <사물들>
- 자본주의와 인사하기

 

 

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을 읽었다.

 

어찌 보면 단조롭고 난해할 수도 있는 이 작품을 아래와 같은 하나의 표현으로 관통해보고 싶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초년생들이, 현대 사회와 '화해'하는 과정

 

이 리뷰의 구조는 페렉의 <사물들>을 관통하는 바로 이 표현을 조각내어 살펴보는 것으로 한다.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사물들'

 

1. 현대 사회

소설에서 묘사된 현대 사회를 이렇게 정의해보았다. ①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와 물질주의 흐름에 따라 '돈'이라는 가치척도로 행복이 객관화 ② 영.미 중심주의 가속화 ③ 노동과 관련하여서는 마르크스의 소외된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 노동활동으로부터의 소외 ⓒ 유적존재로서의 인간의 소외 ⓓ 인간에 의한 인간의 소외)

 

 

① '돈'이라는 가치척도로 행복이 객관화

 

소설 속 그들은, 삶을 '누리는' 것과 '소유하는' 것을 혼동했다.(65p)

다시 말해서 삶 자체가 소유하는 것이고 소유를 다시 말하면 돈을 축척하는 것이다. 돈은 객관적이다. (샤니 빵이 500원이면 이건희에게도 노숙인에게도 그것은 500원인 것이다) 객관적이라 함은 비교가 가능한 것이다. 자고로 현대사회는 행복을 저울에 측정하고, 그 결과치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시대인 것이다.

 

 

② 영.미 중심주의 가속화

보통 우리가 패션과 유행의 중심지라고 생각하는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이 소설 속에서는 영국 패션을 추종하고, 미국 코미디 드라마에 나온 인물들을 생각하며 쇼핑하는 것이 영미 중심주의 가속화를 대변한다.

 

 

 

③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파편화되는 것은 ⓒ'유적존재로서의 인간의 소외' 와 연관이 있고, 안락함과 안정을 위해 사회/제도에 굴복하는 소설 속 인물들에서는 ⓑ'노동활동으로부터의 소외' 를 엿볼 수 있다.

 

조르주 페렉

 

2. 사회 초년생

이 소설의 중심 인물인 실비와 제롬은, 소설의 배경인 1960년대의 청년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 두 인물의 특징은 ①무기력함 ②파편화 이렇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① 무기력함


두 인물은 물론 이 소설에 묘사된 1960년대 청년들은 무기력하다. 그들은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삶과 환경에 대해서도 무기력하다.

 

그들은 사회문제에서 무기력하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앞선 세대, 즉 스페인 내전과 레지스탕스의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을 갈망한다. 그들에게는 저항하고 대응해야 할 분명한 사회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다.(70p) 그리고 자신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무기력한 것은 대응하고 저항해야 할 사회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 주위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이전 세대에는 저항해야 할 독재가 있었다. 이전 세대에는 투쟁해야 할 권위주의가 있었다. 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젊은이들이 처한 문제, 즉 한국어 명사 '젊은이'의 미래형인 '비정규직'의 문제에 대해서도, 또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도 그들은 눈을 감아버리고 만다.

 

소설 속 젊은이들은, 또한,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도 무기력하다. 제롬과 실비는 열정적으로 일자리를 찾지도,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하지도 않는다. 다만, 불안해 하면서(60p)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② 파편화

소설 4장에서는 제롬과 실비 그리고 주위 인물들이 구성한 사회적 집단(계급)이 묘사된다. 그것은 <엑스프레스>지, '신인'(48p), 그리고 '영화'라는 코드를 공유한다. 그러나 이 집단은 소설의 8장에서 파탄이 난다(81p).

 

 

 

표지가 인상적인 펭귄클래식 판 '사물들'

 

3. 현대 사회와의 '화해

제롬과 실비는 일자리를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즉 일자리를 얻고 수입이 생기는 순간, 가치관과 취향의 변화를 경험한다.


"해를 거듭하면서 일이 그들을 바꿔놓았다. 세상의 부를 발견해나갔다." (36p)

 

"돈이 새로운 필요를 부추겼다" (38p)

 

이것은 욕구를 연료로 하는 자본주의 현대사회에 제롬과 실비가 첫 연료를 주입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이 전개됨에 따라 두 인물의 욕구는 점차 확장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첫 욕구와 같이 두 인물의 인성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점차로 두 인물을 잠식해나가기 시작한다. 제롬과 실비가 욕구의 노예가 되어가는 것이다. 물론 이 모습은 제롬과 실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그 두 사람과 함께하는 사회적 집단 모두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자, 이 확장되는 욕구에 대해 소설 속 사람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A. 욕구에 수긍하여 안락함, 안정... 을 위해 사회/제도에 굴복한다. (81p)

 

59p 말미에 잠깐 묘사된 에이전시 소속과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제롬과 실비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이 이 길로 접어드는 것 같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마르크스의 소외된 노동 가운데 ⓑ에 해당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B. 오래된 자유에 대한 애착(82p)

 

이것은 A에 대한 반작용이다.




 

 

 

 

마무리

이 소설은 상당히 씁쓸하다. <사물들>에는 '60년대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롬과 실비와 마찬가지로 무기력하고, 파편화되어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가 무한한 욕구의 추구를 요구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굴복해버리거나 혹은 오래된 자유에 대해 그리워한다. 혹은, 더 많은 경우, 둘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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