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버넷 <비밀의 화원>
-집단적 원서 읽기의 유익성
-집단적 원서 읽기의 유익성
지난 9월부터 읽기 시작한 프랜시스 버넷의 '비밀의 화원'을 이제 덮습니다. 엇나간 어린 아이들이 자연과 따뜻한 사람들의 품 속에서 올곧게 성장해나간다는 내용의 아동 동화입니다.
혹시 비밀의 화원(Secret Garden)을 원서로 읽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Gutenberg Project"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곳은 '비밀의 화원'과 같이 저작권이 만료된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는 좋은 사이트입니다.
이곳을 클릭하면 비밀의 화원을 무료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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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리 레녹스(Mary Lennox)는 인도의 영국인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철부지 소녀입니다. 메리는 인도 보모(Aya)의 무조건적인 순종 속에서 오냐오냐 자라나서 버릇이 없고 고집이 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인도에는 콜레라가 창궐합니다. 이때 메리는 두 부모를 모두 잃었고, 고아가 된 메리는 낯선 영국 땅을 밟게 됩니다. 바로 영국의 귀족인 고모부 크레이븐(Craven)의 집에서 키워지게 된 것입니다. 메리가 새로 정착하게 된 곳은 영국의 요크셔 지방으로, 그 지방은 너른 황무지(moor)에 생동하는 자연의 힘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또한 심한 사투리도 요크셔 지방의 큰 특색입니다.
이곳에서 메리는 점차 자신과 자연, 그리고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해 나갑니다. 인도에서는 일방적으로 투정부리고 명령하면 보모들이 알아서 메리에게 져 주고 메리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었지만, 요크셔에서의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크셔에서 메리의 수종이었던 마사(Martha)는 메리에게 '스스로 옷을 입으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자연에서 뛰어놀 수 있도록 메리를 이끌어냅니다. 마사의 영향으로 메리는 저택 내부를 방황하거나 저택의 큰 정원을 떠돌아다니게 됩니다. 더 나아가 고모부 크레이븐 역시 이렇게 뛰노는 메리를 막지 않고 오히려 요크셔 황무지의 생명력을 통해 메리가 회복되도록 종용합니다.
저택 주변을 떠돌던 메리는 문이 잠겨있던 어느 화원을 발견합니다. 바로 비밀의 화원입니다. 이곳은 메리의 고모인 크레이븐 부인(Mrs. Craven)이 10년 전 죽은 곳이라 그 이후로는 문이 잠겨있었던 것입니다. 메리는 기적적으로 정원으로 들어가는 열쇠와 문을 찾아내고 10년 간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정원을 돌보기 시작합니다. 이때 마사의 오빠이자 황무지 소년인 디컨(Dickon)이 Mary를 도와줍니다.
요크셔 지방의 특색인 Moor를 잘 찍어 놓은 사진입니다.
메리가 머물고 있던 저택은 사실 조금 이상한 점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빈 방이 많다는 것이고 둘째는 때때로 밤마다 어디선가 슬프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밤 메리는 울음소리를 쫓아 몰래 자기 방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울음소리의 출처를 찾아내는데, 어느 방 안에 삐쩍 마르고 희여멀건한 소년 하나가 서럽게 울고 있던 소리였습니다. 이 소년은 저택의 주인이자 메리의 고모부인 크레이븐의 아들인 콜린(Colin)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메리와 콜린은 고종사촌지간인 것입니다.
사실 알고보니 콜린은 인도에 있을적의 메리와 닮은 점이 많았습니다. 제멋대로였고 고집이 셌으며 철부지 소년인 것입니다. 게다가 콜린은 건강염려증이 매우 심해서 자신이 곧 죽게될 것이라는 생각 속에서 하루하루 연명해가고 있었습니다.
메리는 콜린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메리의 도움으로 콜린은 점차 정상적인 소년이 되어갑니다.
결국 메리는 황무지 소년 디컨을 콜린의 방으로 데려오고, 세 사람은 친해집니다. 그리고 메리와 콜린 그리고 디컨은 비밀의 화원에 함께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황무지의 생명력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처음에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허약했던 콜린은 휠체어에서 일어나게 되고 점차 살도 쪄서 건강한 소년이 됩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오랫동안 전 세계를 방황하고 있던 크레이븐은 어느 날 잠을 자는데, 죽은 아내가
비밀의 화원에서 자신을 부르고 있는 꿈을 꾸게 됩니다. 콜린은 곧바로 요크셔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회복된 콜린과 극적으로 대면합니다.
결국, 요크셔 자연의 큰 생명력과 좋은 친구들 덕분에, 소설 초반에 건강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던 콜린과 메리 그리고 콜린의 아버지 크레이븐 모두가 회복된다는 이야기로 비밀의 화원은 마무리됩니다.
위 영국 지도에서 ①로 표시된 곳이 바로 요크셔 지방입니다.
2.
누구나 역경을 겪고 누구나 실패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크거나 작은 고통을 줍니다. 이러한 역경과 실패 그리고 고통의 기억은 한 사람의 내면에 죽은 피와 같이 고여서 그 사람을 병들게 합니다. 죽은 피를 뽑아내야 하듯이 이런 나쁜 기억들 역시 하루빨리 털어버려야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크레이븐에게 비밀의 화원은 아내의 상실이라는 과거 사건을 의미합니다. 크레이븐은 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드러내고 털어버리려 하지 않고 감추고 닫아버리려고만 합니다. 비밀의 화원의 문을 잠그고 그 열쇠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크레이븐의 상처는 조금도 낫지 않고 오히려 안에서 곪아가게 됩니다.
크레이븐은 아내를 유독 닮은 콜린에게 정을 주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모성애를 경험하지 못한 것은 물론, 아버지의 사랑조차 받지 못한 채 자라난 콜린도 정상적으로 자라나지 못합니다. 크레이븐의 상처가 스스로에게만 해를 준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준 것입니다. 따라서 간접적으로 비밀의 화원은 콜린의 상처에도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콜린과 크레이븐은 메리와 소워비 여사 그리고 소워비 여사의 아들 디컨의 도움으로 과거의 상처를 씻고 정상적인 사람이 됩니다. 특히 닫혀있던 과거의 비밀의 화원을 열어젖힌 메리는 두 사람이 회복되는 데 큰 힘을 주었습니다. 과거 상처의 공간인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온 콜린과, 꿈속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비밀의 화원을 찾은 크레이븐은 결국 회복됩니다.
아픈 상처를 가슴 속에 묻어두기만 한다면 그 상처는 속에서 곪아서 더 큰 병을 만들 수 있다는 작은 사실을 이 동화를 통해 다시 깨달았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상처, 자신의 아픔을 말하세요.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일에 대해서 사과를 한다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3.
이 책을 한글로 읽었으면 어땠을까요? 아마 요크셔 사투리나 버넷 여사의 요크셔 풍경 묘사를 십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한글로 읽었으면 어땠을까요? 아마 요크셔 사투리나 버넷 여사의 요크셔 풍경 묘사를 십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번역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한국화된 현지 음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중국 현지에서 먹었던 동북지방의 음식과 남방 음식은 한국에서 말하는 중국음식과 참으로 많이 달랐습니다. 특히 샹차이는 적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현지 음식의 걷잡을 수 없다는 맛에 제 친구는 한국식 짜장면 한그릇을 먹고 싶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중국집에 있는 요리를 먹고서 '나는 중국 현지 요리를 먹었다'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중국집의 음식이 중국 현지의 음식에 비해 맛이 없다고 결코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때론 거친 글에 한참을 똑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고 할 수도 있지만, 원서를 읽는 것은 중국에 가서 중국 현지 요리를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중국 현지 요리의 진가를 알려면 단기간의 관광으로는 어림도 없듯이, 원서의 참맛을 알려면 더듬더듬 읽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예 중국에 터를 잡고 중국 음식을 현지인처럼 찾아먹을 수 있을 때라야 진정 중국 음식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작가가 쓴 그대로의 문학 작품 참맛을 보기 위해 우리 독자들도 그런 노력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4.
사실 '혼자서 조용히 등을 따숩게 대고 앉아서 책을 읽는다'라는 개념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보면 오히려 새로운 개념입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이전까지의 독서는 필연적으로 집단적 독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개인이 장서를 모아놓고 혼자서 그것을 읽어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책은 희귀한 것이었고 내가 읽는 책은 대부분 다른 사람도 읽었던 책이었을 것입니다.
즉, 책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원래, 혼자서 읽고 혼자서 감상해서 혼자서 정신수양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고 (때로는 암송하고), 여러 사람들과 치열하게 이야기함으로서 이 감상이 내가 생각한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들은 건지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무기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입니다.
카프카는 "한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조용한 시간에 혼자서 묵상하며 읽는 성경책, 수양록, 명상집은 '한권의 책'이 될 수 없습니다. '한권의 책'이 개인의 내면을 깨뜨리고 그래서 '나'보다 더 큰 '우리'로 연대하기 위해서라도 독서는 필연적으로 집단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저의 작은 신념이고, 저는 카페런던이 이와 같은 독서의 참 방향을 올곧게 실현해나가는 좋은 모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크 랑시에르가 '프랑스 대혁명의 주체는 흔히 알려진 자유사상가들이라기보다는 낮에 일을 하고 밤에 공부+감성연마를 했던 노동자와 도시빈민들'이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저는 카페런던이라는 모범적 형태를 가진 아마추어적 독서모임들이 세상을 바꿔나갈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다음 책에서도 모두 함께 재미있게 그리고 치열하게 작품을 읽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9월부터 지금까지 짧지않은 항해를 마치고 중간 기착지에 도착하신 모든 분들을 환영하며,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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