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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ity/기독교: 신앙고백

개독교 비난에 대하는 산상수훈의 대처법

by Feverish 2011.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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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 마태복음 5:13, 16(새번역)







한국 개신교회의 성장 속도는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

 보수적 목회자들은 한국 교회의 빠른 성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성도들에게 잊을만 하면 '주님의 주신 은혜로 이루어진 한국 기독교 100년의 역사'를 상기시키려고 노력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회 3곳이 모두 한국에 있고,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란다.

 50년 동안 가파르게 이루어진 한국 경제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한국 기독교의 성장은 분명 놀라운 것이고, 그 양적 성장은 참으로 감사의 제목이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의 실상이 모두 밝은 면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대중 사회에서 기독교의 위치는 어떠한가? 명동 한복판에서, 강남역 길 한 가운데에서,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비성경적 억지 교리를, 마치 저주를 내리듯 윽박지르듯 외치고 비신자들은 애초에 '개독교(!) 비난하는 틀'을 만들어 놓고, 언론이나 매체에서 조금이라고 교회나 목회자의 흠을 잡는 이야기가 나올라 치면 "거봐라"는 듯 그 하나같이 틀에 막힌 주장을 앞으로 내세운다.


예수천국/불신지옥


교회가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전도/포교를 하고, 세상에서는 교회를 비난하는 것은, 더 심하게 말하자면 박해를 하는 것은, 인류사에서 그닥 새로운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중세를 제외하고는 세상과 교회가 같은 편에 선 시기는 많이 않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와 세상간의 격리 - 괴리는 그 문제가 교회 내부에 있기 때문에 단순한 세상의 박해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교회와 세상 사이의 갈등으로 치부하기가 힘들다.

 

지구상에서 개교회로는 가장 크다는 그 교회에서 벌어지는 가정사와 교회정치, 성내의 큰 장로교회에서 일어났던 교회 분열과 상호 비방, 일부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목회자 대물림, 대통령이 다닌다는 교회에서 일어났던 폭력사태,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을 전면에 내세우고 제자교육을 중시하며.. 무엇보다 지역사회에서 교회가 지녀야 할 역할을 생각한다며 영어 이름에 community를 집어넣는 그 교회에서, 막상 지역사회의 공공재인 도로를 무단 점거하여 성전건축을 감행하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086304), 더 나아가 주일에도 공사를 진행하는 비성경적 행태(출애굽기 20:10. (...)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를 멈추지 않는 등등...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일부 목회자들은 "교회를 비난하는 적그리스도..."라는 말로 이들에게 저주에 가까운 괴설을 퍼붓고 있다.(적그리스도는 개신교의 성경인 개역개정판에 나오는 개념으로,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에서만 등장한다.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그러나 적그리스도는 성경의 필자를 빌리자면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자.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자, 그리고 예수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를 말한다. 몇가지 생각나는 주체들은 1. 유대교, 2. 이슬람, 3. 무신론자들 정도다.(그리고 기독교의 이단 몇가지...) 나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 교회를 비난하는 사람은 많아도 예수를 비난하는 사람은 눈씻고봐도 찾을 수 없다. 교회를 비난하는 사람이 곧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터무니없다. 따라서 "교회를 비난하는 적그리스도.."라는 말 자체는 호도하는 말이다. 이들의 논리라면, 서방 세계의 유일한 공교회였던 가톨릭을 부인한, 교회의 비난자 프로테스탄트가 적그리스가 아닌가?! (목회자의 양심고백이 아닌바에야 프로테스탄트가 적그리스도라고 고백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또 성경의 이 대목은 어떤가?  "너는 이 큰 건물들(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마가복음 13장 2절, 새번역) 자, 목사들은 이것도 적그리스도라고 말할 것인가? 교회의 큰 건물들이 다 무너질 거라고 얘기하는건 교회를 비난하고 욕하는게 아닌가! 문제가 있다면 인용한 성경 대목이 바로 예수가 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승리?


혼란이다. 모순과 반목과 상호 비방만이 가득한 이 주제에 대해 나는 기독교의 핵심적 근간인 예수의 산상수훈을 다시 읽는다.

 

마태복음 5장부터 쭉 이어지는 예수의 설교인 산상 수훈, 특히 5장 13절과 16절을 묵상할 때마다 나는 지금의 교회 생활과 예수가 말한 제자도가 엄연히 다르다는 생각을 매번 한다. 예수가 말한 올바른 길이 지금의 교회의 신앙생활과 같다고 생각하는가? 즉, 교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각종 행사를 하고, 교회 안으로 또 안으로 결집되고 세상과 벽을 쌓고, 더 나아가 성경을 덮고 목사의 설교를 적고 또 읽으며, 교회적 교리(성경적 교리도, 예수의 제자도도 아닌)를 세상에 일방적으로 내뱉고, 사람 대 사람이 아닌 교회(집단) 대 소수자로 지옥의 공포와 저주를 무기 삼아 비신자들에게 윽박지르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인가? 마5:13-16의 말씀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예수는 "소금이 되어 세상에 녹아들고 빛이되어 세상을 밝혀라. 너희가 착해져야 그들(비신자or세상사람들)이 그 행실을 보고 하늘의 아버지를 생각하는 거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나는 앞서 말한 교회의 나쁜 행실들이 사회적으로는 전혀 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물론 맞는 이야기지만 그래도..."라고 답변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나는 지금 교회에 다니는 것을 비난하거나, 교회를 부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또한 나는 '모이기를 힘쓰라'는 성경의 말씀을, 성경의 다른 말씀들과 마찬가지로 신봉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세상과의 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이기를 힘쓰느라 세상을 향해 쌓은 교회의 높은 벽을 부수고 세상 속에 교인들이 녹아져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네거티브 교리(즉, 나를 통하여야 천국에 간다는 성경 말씀을 형식논리로 치환하여 믿음 = 천국 // 그렇다면 안믿음(불신) = 안천국 , 안천국 = 지옥 따라서 안믿음 = 지옥... 한마디로 지극히 인간적인 논리), 정죄와 저주의 접근법으로 전도를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전도를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진정한 전도란, 傳道 즉, 도(道)를 전하는 것이다. 예수가 말한 도를 전하는 것이 곧 전도가 아닐까? 다시 말해서 세상 속에 녹아들어 "착한 모습" - 즉, 손해보면서도 남을 위하는 모습, 약점을 보이는 모습, 신뢰할 수 있는 모습을 모임으로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떠올리고, 그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하는 것"(신자인 니가 영광을 돌리는 것 - 축구선수가 골 넣고 기도 세러모니 하는 것이나 연기자가 수상소감에서 하나님 운운하는 것 등등등 - 이 아니라 비신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기독교의 교리(예수 천국 불신 지옥)가 아니라 예수의 도리(착한 행실을 통한 감화)를 실천하라고 한다면 쉽게 도식화가 되려나?

 

  

그러나 문제는 스스로가 수요예배, 금요예배, 초청예배, 강연예배, 그리고 주일 찬양예배에 참석하니까 독실하다고 자칭하는 소위 크리스천들의 대부분이 분명히 교회의 교인이지만, 애매하게 예수의 제자라는 것이다. 예수는 구원을 묻는 무리에게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그런데 힘써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마가복음 13장 23~30절) 또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구원을 받는게 어렵다고도 했다.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지만, "예수님을 믿어요"라고 생각하고 또 말하는 게 구원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교회의 목회자들은 좋은게 좋은거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치열한 믿음과 끊임없는 제자도의 추구를 통한 구원은 슬쩍 얼버무리고, "구원? 그건 예수님 믿으니까 이미 받았다고 치시고, 더 중요한 얘기를 합시다. 돈, 명예, 세상에서의 성공 이런거를 교회다니면 얻을 수 있어요. 아 왜, 그 머시기..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긴다지 않습디까. 믿으십시오. 그러면 산을 옮기고 성공도 하고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할렐루야!!! 아니 저기 잠깐만, 할렐루야 하면 아멘 하는거 몰라요? 자, 할렐루야!!!" 이래버리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나는 매번 마태복음 7장 23절의 "나는 너를 모른다"하시는 말씀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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