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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ity/기독교: 신앙고백

빛, 그 감동의 단어 - 지하 어둠속 초기 기독교인에게 공감하기

by Feverish 2012. 1. 13.





빛, 그 감동의 단어
- 지하 어둠속 초기 기독교인에게 공감하기




이 포스팅은 온건한 에큐매니컬 기독교 신앙을 가진 한 개인으로서 성경에 대해 묵상한 내용입니다.

저는 신학생도, 목사도 아닙니다. 신학적인 문제 제기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다만 기성 기독교단 자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2012 말씀, 그리고 하루
헤른후트 형제단 기도서


그 가운데 주현절 첫째 주 금요일(1월 13일)자 묵상을 하면서 느낀점입니다.


종교개혁 초창기의 순수성을 가지고 독일에서 시작된 헤른후트 묵상 · 기도서, '로중'(Losung - 영어로는 Daily Watchwords)은 282년째 이어져 내려오면서 슐라이에르마허, 본회퍼, 코트비츠, 비헤른 등 수많은 개신교계 선각자들에게 큰 영감을 준 묵상집입니다. 

헤른후트 형제단의 묵상 · 기도서, '로중'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1.

1월 13일. 주현절 첫째 주 금요일, 로중의 신약 부분에서 크게 감동했다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새번역)







 
2.

오늘 (2012년 1월 13일)의 말씀을 묵상하며 나는 아시시의 성인 聖프란체스코가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 앞에서 엎드려 기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기도문을 떠올렸다.





 

엘 그레코가 그린 성 프란체스코




그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시여
내 마음의 어둠을 밝혀 주소서.
주님, 당신의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실행하도록
올바른 신앙과
확고한 희망과
완전한 사랑을 주시고
지각과 인식을 주소서. 아멘
 




신기하게도,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은 고린도후서 본문의 구조 그대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성경)
     ->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시여, 내 마음의 어둠을 밝혀 주소서.   (기도문)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성경)
     -> 올바른 신앙과 (...) 지각과 인식을 주소서. (기도문)




3.

나는 지난 여름에 터키를 갔는데, 관광 코스 중에 '데린구유'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정치적 지배자의 학살을 피해 대체로 약한 사람들이 숨어들었던 땅속 도시이다.


데린구유로 들어가는 구멍은 한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작고 뿐만 아니라 바위로 막을 수 있지만, 일단 굴 안에 들어가면 넓은 토굴이 마치 개미굴처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침략자의 말발굽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고 너무나 무서운 나머지, 비를 피하는 개미떼처럼 땅굴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로마 공인 이전의 기독교도들도 이곳으로 숨어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사학자들은 데린구유에 있는 십자가 모양의 토굴이 초기 기독교인의 예배장소로 추정한다. 







지금에야 인공적인 조명시설이 장착되어 있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곳에서는 결코 명랑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플래시를 터뜨려도 사진이 잘 나오지도 않는다.


죽은 후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인 인간이 흙 밑으로 들어가는 것은, 언젠가 직면해야 하는 죽음을 일깨워주기 때문일까?

흙 밑인 그곳에는 전기 조명으로도 밝힐 수 없는 원초적인 어두움과 눅눅함이 상존한다.







4.

여기 한 무리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지하의 어두움 속에서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말발굽 소리가 나고 누군가 땅굴의 문을 열었을 것이고,


"기독교도들이 황제를 숭배하지 않자,
이들을 죽이는 데 혈안이 된 로마군 병사들이
드디어 우리가 있는 곳을 알아채고 우리를 잡으러 온 것이다"



하고 신자 중 누군가는 체념한 듯 소리쳤을 것이다.

하지만 육중한 돌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로마병사가 아닌, 바울의 편지를 들고 온 사자였을 것이다.





바울의 편지를 받은 초기 신자들은 땅굴 속에 겨우 하나쯤 켜져 있었을 횃불 주위에 둘러선 채 편지를 한글자 한글자를 분간해 내려갔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형광등도, 양질의 종이도 없었을 것이다.

신학의 체계를 구축할 바탕이 될 문서 (오늘날 흔히 성경이라고 부르는 문서들의 집합) 도 없었을 것이다. 

마음을 벅차게 하는 파이프오르간이나 성가대 찬양은 커녕, 소리 높여 찬양을 부를 예배당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보다 그들이 가진 것을 헤아리는 것이 더 빠르겠다.

그들이 가진 것은 바울의 친서, 그리고 성령으로 가슴 벅찬 마음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러한 이들에게, 바울의 편지에 적힌 "빛"은 어떤 의미였을까?




5.




'로마에 있던 카타콤은....
예수 믿는다고 하면 주로 이방사람들이 믿었습니다만 밖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신앙이었습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자유로웠지만,
시민권 없는 사람은 하루하루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중에 시민권 갖지 않는 사람들 중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았고,
시민권 갖진 사람들 중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였습니다.



그 당시, 제가 서기 64년도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64년도 그러면 성경말씀이 쓰여지던 당시 상황입니다. (...)
아마 오늘 골로새서도 이쯤에 쓰여 졌을거라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골로새서 말씀은 카타콤에 있는 신자들에게 하는 말씀이고, 모든 성도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절망, 어둠, 불안, 엄청난 속에서 살고 계시죠?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늘에서 빛이 내려서 절망을 뚫고 새로운 생명의 복음을 줍니다.
조금 기다리세요. 핍박받겠지만 핍박을 넘는 또 하나의 생명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 골로새서가 말씀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별로 감동이 안 오십니까? 카타콤에서는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이것은 지난 주일 (2012년 1월 8일), 경동교회 주일 대예배 설교문이다. (링크)


경동교회의 매주 설교 본문은 교회력에 따라 구약, 서신서, 복음 이렇게 3개 구절이 미리 정해져 있는데,
이날의 본문은, 이사야서 60:1-6 / 골로새서 1:25-27 / 요한복음서 1:1-5 였다.


지금 위에서 인용한 부분은 박종화 목사님의 주일 예배 설교 중에서 서신서인 골로새서를 인용한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골로세서에 적힌 '빛'은.. 스위치를 올리면 켜지는 형광등의 빛도, 시키지도 않아도 하루에도 몇번씩 문자나 카톡이 올 때마다 자기 맘대로 켜지는 핸드폰 액정의 빛도, 공동묘지마냥 하늘에 멋없이 비죽비죽 서있는 붉은 십자가 네온 불빛도 아니었을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생각지도 못했다.




6.

서신서를 읽다 '빛'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오면, 앞으로 한동안 나는 나 자신을 데린구유에 데려다 놓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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