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15절, "..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 여기에서 "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마태복음서 5장 13절 - 16절, 새번역)
1. 말 아래 둔다고? 동물 말의 아래에 등불을 걸어놓는다고?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산상수훈에서는 “등불을 말 아래에 둔다”(마 5:15)는 말이 나오는데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말해서는 “말 아래에 둔다”할 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다만 이어지는 “그렇지 않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를 보고, 말 아래에 둔다는 표현의 의미가 “감추다”, “숨기다” 정도겠거니 생각했다.
2. 성서의 각 한글 역본 비교
새번역, 개역, 개역개정 모두 마5:15을 “등불을 말 아래에 둔다”라고 똑같이 번역했다.
새번역: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마태복음서 5장 15절, 새번역)
개역한글판/개역개정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마태복음 5장 15절, 개역)
의미 번역(Dynamic Equivalence) 경향을 가진 공동번역에서는 “등불을 됫박으로 덮어놓는다”라고 번역했다.
공동번역개정판: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마태오의 복음서 5장 15절, 공동번역개정판)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역본들을 살펴보면, “200주년기념 신약성서”에서는 공동번역을 따라 “됫박”으로 번역했고, 현재 사용되는 “성경”에서는 “함지 속”이라고 번역했다.
200주년 신약:
사람들이 등불을 켜서 그것을 됫박 밑에 놓지 않고 등경 위에 놓습니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비칩니다. (마태오 복음서 5장 15절,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
성경: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
(마태오 복음서 5장 15절, 성경)
각 역본에서 사용된 어휘를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역본 | 어휘 |
새번역/개역 | 말 |
공동번역/200주년 | 됫박 |
가톨릭 성경 | 함지 |
새번역과 개역에서 사용된 '말'은 원문에서 표현된 됫박이나 함지를 달리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새번역 및 개역에서 원문을 직역한 것을, 나머지 역본에서 의역하여 전혀 새로운 어휘를 끌어온 것일 수도 있다. 됫박과 함지는 한국어 원어민인 필자의 입장에서 "상당히 다른 두 대상"이다. '말'의 의미는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3. 산상수훈의 평행본문 비교
마태복음 5장 15절의 평행본문을 보면, 누가에선 “그릇으로 덮는다”(눅8:16)고 했고 마가에는 “말 아래나 침상 아래에 둔다”(막4:21)라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마태와 누가에서는 빛 얘기와 소금 얘기가 평행을 이루며 (산상수훈으로서) 같이 언급되는 데 비해, 가장 일찍 서술된 것으로 믿어지는 마가에서는 빛 구절과 소금 구절이 따로따로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마가가 빛과 소금 구절을 훨씬 담백하게 묘사하고 있다.
새번역: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너희는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겠느냐? 너희는 너희 가운데 소금을 쳐 두어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라.” (마가복음 9장 50절)
짧은 문장으로 이어지는 담백한 서술이 매력적이다!
어쨌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마태, 마가, 누가 세 사람이 똑같이 들었고, 각자의 표현으로 적었다고 했을 때, '말'의 의미는 그릇 내지는 침상 아래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릇과 침상은 너무나 다른 대상이다. '말'의 의미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말'이라는 것이 덮개, 됫박, 함지 등 뭔가를 덮는 용도로 사용되는 물건인 것 같다.
이번에는,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말”을 찾아보았다.
말02[말ː]
「명사」
톱질을 하거나 먹줄을 그을 때 밑에 받치는 나무.
말03
「명사」
곡식, 액체, 가루 따위의 분량을 되는 데 쓰는 그릇. 열 되가 들어가게 나무나 쇠붙이를 이용하여 원기둥 모양으로 만든다.
어떤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예수님이 목수였다는 점에서는 말02이 유력하지만 말03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4. 고대 헬라어 원어 성경 찾아보기
결국, 원어를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끝까지 원어 성경 펼쳐보기를 주저한 것은, 신학 전공자가 아닌 나의 입장에서 신약성서의 저술에 사용된 고대 헬라어는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저명한 신학자들이 골머리 싸매고 해석 내지는 해설해놓은 한국말 성서 역본을 가능한 한 참고하는 편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헬라어-영어 대역 신약성서를 참조했다. 인터넷에 무료로 제공되는 것들이 많다. (구글에서 interlinear greek bible 검색)
마태복음 5장 15절을 검색한 결과, 새번역/개역개정/개역 판본에서 '말'이라는 단어로 번역하고, 공동번역, 가톨릭 성경 등에서는 됫박, 함지 등으로 번역한 그 단어는 “μόδιον”(모디온)이었다. 이 단어의 원형(base form)은 μόδιονς (모디오스)로, Strong 3426번이다. 신약성서에서 전체 가운데 오직 산상수훈에서 등불 얘기를 할 때에만 사용되었다.
Greek Lexicon에서 이 모디오스(μόδιονς)를 찾아보니 a dry measure holding 16 sextarii, about a peck (9 litres) 라고 풀어놓았다. 풀어 말하자면, 16섹스타리우스 즉 1펙(약 9리터)와 같은 건식 측량단위다. 섹스타리우스는 예수 시대 로마에서 사용하던 도량형이다.
한마디로 μόδιονς는 도량형이었던 것이다. 아마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15절에서 모디오스(μόδιονς) 용기 밑에다가 등불을 숨긴다는 의미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것 같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도량형인 '말'(위에 국어사전 인용한 것 중에서 말03) 로 번역한 것은 정말 기발하고도 기가 막힌 번역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물론 말과 μόδιονς의 용적이 같지는 않지만)
하지만 “말”에는 너무나 많은 동음이의어들이 있으므로 의미 전달에 문제가 있다. 따라서 됫박, 함지 등으로 번역한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각주를 통해 마태복음 5장 15절에서 사용된 '말'이 동물이나 speech가 아니라 측량단위로서 쓰여졌음을 명시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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