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교회의 성령운동 돌아보기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사건은 ‘빨리빨리’ 주의에 빠져 있던 우리나라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빨리빨리’와 같이 정도를 거부하고 지름길을 추구하는 세상의 논리는 때로 큰 폐해를 낳곤 합니다.
'빨리빨리'주의, 그리고 무리한 경쟁이 기독교의 참된 가르침까지 가려버린 단편적인 예가 바로 '한국 교회의 성령운동'입니다.
1. 잘못된 부흥을 위한 수단, 무분별한 성령운동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성령관과 교회관을 기초로 오늘날의 무분별한 성령운동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주장을 일단 짚어보자면, 저자는 온전한 십자가 믿음을 품지 않은 성도ㆍ목회자들이,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 성령을 도구화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성령 운동은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전체적으로 일단 진정한 부흥의 의미를 짚어보고 한국교회에서 부흥이 잘못 인식되고 있고, 이 잘못된 부흥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령 운동이 사용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세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성령 운동은 그만하고 온전한 십자가 믿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저자의 최종적인 주장입니다.
2. 도대체 부흥이 무엇이기에?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부흥을 살펴보겠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부흥은, 오순절 사건 이래로 이미 오신 성령님의 자리를 우리가 스스로 돌이켜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교회에서의 부흥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성전을 크게 짓고, 성도 수가 늘어나고 헌금이 많이 걷히는 교회를 부흥된 교회라고 부릅니다. 목회자들은 자신이 담임하는 교회의 세가 커지고 교회의 이름이나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서 유명해지고 인정받는 것으로 주님의 은혜를 확인하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을 강력히 비난합니다. 저자는, 성장 제일주의, 성과주의, 경제 제일주의 등 세상의 잘못된 논리와 교회가 야합하고 있으며, 인간적 열정과 야망의 산물인 이러한 논리를 십자가에 못 박기보다는 오히려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이곳에 임할 수 있도록 세상에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 교회들이 도리어 에베소서 2장 2절에서 바울이 비난하는 것과 같이 세상 논리에 현혹되어 세속화된 것입니다.
(...)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에베소서 2장 2절, 새번역
저자는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의 인정에 집착하는 목사들을 두고 ‘세상의 신에 사로잡혔다’라고까지 강하게 비난합니다. 더 나아가 교회가 세속화된 가장 큰 원인을 온전한 십자가 믿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세속화된 교회는 기복적, 염원적, 그리고 신비주의적으로 흐르게 됩니다. 특히 신비주의적이라 함은 말씀의 힘이 아닌 초자연적 현상, 입신, 병의 치유, 방언, 영서 등을 통해 성도들을 ‘제압’함으로서 교회(심하게 말하자면 목회자 개인)의 권위를 세우려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기독교 믿음은 이러한 것들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성경적인 믿음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믿음입니다. 이것은 다니엘서 3장 17절과 18절에서 나온 것인데,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해주실 것이다.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 라고 고백하는 대목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불 속에 던져져도, 임금님, 우리를 지키시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활활 타는 화덕 속에서 구해 주시고, 임금님의 손에서도 구해 주실 것입니다.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임금님의 신들은 섬기지도 않고, 임금님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다니엘서 3장 17절부터 18절, 새번역
<사자굴 속의 다니엘>
현실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능력을 달라는 기도에 오히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리에 내려가게 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하지만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절망밖에 없는 이러한 상황은 주님께서 기도에 불응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버리고 그 빈자리를 성령으로 채우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자기가 가진 육신의 힘과 지혜를 버릴 때 비로소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성령보다 우선시하여 강조하고 있는 온전한 십자가 믿음입니다. 즉, 세상적인 소욕과 세상적인 지혜, 그리고 자만심을 버리는 철저한 자기 부인을 거치고, 스스로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믿음이 바로 십자가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은 일단 이러한 믿음에 기초하여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성령 강림의 대명사인 오순절 사건은, 먼저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 믿음의 전형을 일단 보여주신 다음에 발생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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