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근원적 고통의 이야기
이 작품에서 아편은 단순히 포장에 불과하다. 이 작품은 결국 한 인간의 뿌리깊은 악몽과 고통을 고백적 어투로 고백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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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편 경험담?
이 책을 꺼내 들기 전까지 나에게 토머스 드 퀸시는 낯선 작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이름을 보고 이 책을 고른 것은 분명 아니다. 처음 이 책으로 나의 손이 간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아편을 마약으로 분류하고, 아편 복용을 처벌하고 있다. 아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의 재배도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서, 교육용 재배의 경우 신고하도록 하고 있고, 그 이외에는 양귀비를 재배하면 처벌받는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 아닐까? 그렇지만 아편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에, 이 작품의 제목은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아편 복용으로 인한 환각증상이나 기분이 몽롱해지는 상태, 그리고 중독되었을 때 (아편도 분명 마약이니까 중독되겠지) 에는 어떻게 되는것인지 등등..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아편 복용에 대한 간접경험을 위해 이 작품을 읽으려 한다면 아니 읽는 것이 훨씬 낫다. (차라리 인터넷 검색을 하라.) 이 작품은 아편 중독 경험담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과 악몽에 대한 이야기이다. 더군다나 이 작품의 서술자는 다소 불친절하기 때문에 상당히 지루할 것을 각오하고 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2. 인생은 우울하다. (단, 소설 속 괄호와 같이 행복한 순간은 분명 존재한다)
내가 이야기하려는 1816년은 자백하건대, 우울했던 인생 가운데 하나의 괄호와 같은 해였다. (보석 세공사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그 해는 아편으로 어둡고 흐리고 우울했던 기간 가운데에서 따로 떼어내 세공해야 하는, 말하자면 반짝이는 물결과 같은 한 해였다.
- 토머스 드 퀸시 <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 104페이지
드 퀸시는 우울한 인생을 보냈다. 출판사의 저자 소개를 보면, 드 퀸시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훌륭히 구사했지만 가정과 학교에서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맨체스터 문법학교를 다니다 도망하여 웨일스 등지를 방랑하고, 뒤에 런던에서 여러 달 머물며 가난하게 살았다. 1
가난하게 살았던 이 시절은 두 가지 부분에서 드 퀸시의 이후 일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첫째, 이 시기에 드 퀸시는 잘 먹지 못하여서 이후 평생 극심한 위통을 앓았고, 그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아편을 시작한다. 둘째, 이 시기에 함께 고통을 공유했던 여인으로 '앤'이라는 여인이 등장하는데, 아마 드 퀸시의 첫사랑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드 퀸시는 아편 복용 후 꿈 속에서 이 여인을 만나는 등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속앓이를 잊지 위해 드 퀸시는 아편을 시작하고 점차 중독의 길로 접어든다. 당시 아편은 싼 값에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아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지금보다는 호의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2 드 퀸시는 아편 중독 후 고통스러워하고, 악몽을 꾸고, 정상적인 가정 생활도 힘겨울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드 퀸시의 고통과 악몽이 아편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작품 말미에 드 퀸시는 아편을 끊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고통이나 악몽이 덜해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드 퀸시가 겪었던 고통과 악몽의 근원적인 원인은 사실 아편 복용을 시작하기 이전에, 런던에서 겪었던 거친 경험이 아니었는가?
<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초반의 아편은, 불행한 현실에서 잠시 도피하도록 도와주는 값싼 탈출구였다. 진통제로서 별다른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으며, 다만 잠을 많이 자게되고 꿈을 많이 꾸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편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아편은 마약으로 분류되어 복용은 물론이거니와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의 재배조차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민중들에게 유사-아편을 부여함으로서 체제를 유지한다. 이시대의 유사-아편은 널렸다. 텔레비전, 온라인게임, 프로스포츠, 격투기 경기, 값싼 섹스, 그리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 칼 마르크스 <해겔 법철학 비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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