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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Life/책거리: 고전

알렉산드르 푸시킨 <대위의 딸> - 핑크빛으로 쓴 실패한 혁명기

by Feverish 2011. 12. 29.





알렉산드르 푸시킨 <대위의 딸>
- 핑크빛으로 쓴 실패한 혁명기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소설 <대위의 딸>을 읽었다. 시인으로 유명한 푸시킨이 쓴 소설이라 신선한 매력이 있었다.


대위의 딸
국내도서>소설
저자 :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Aleksandr Pushkin) / 심지은역
출판 :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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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위의 딸>은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책이다. 역사 소설이라는 이야기만 듣고 책을 펼쳤는데, 작품의 저자인 푸시킨은 친절하게도 유머를 섞어가면서 독자들에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위의 딸>은 러시아라는 먼 나라에서, 지금으로부터 먼 옛날에 벌어진 사건을 다룬 이야기였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치 할머니 머리맡에 누워 전래동화를 듣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낯선 러시아 이름들이 감상을 가로막는 복병이었다. 러시아 이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여러가지 '장치'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이름은 성과 이름으로 구성된 단순한 형태를 지니고, 고작해봐야 옛 선비들이 '호'를 지었을 따름인데, 러시아에서는 한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 참 다양하다.


우선 이름이 있고, 이름 뒤에는 아버지 이름에 -비치(남자) / -브나(여자) 를 붙이는 '부칭'(父稱)이 따라온다. 부칭 뒤에는 마지막으로 성(姓)이 붙는다. 이 책을 지은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의 풀 네임 역시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푸시킨의 풀 네임은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 푸시킨의 이름은 알렉산드르, 그리고 푸시킨의 아버지가 세르게이였기 때문에 부칭은 세르게예비치, 그리고 성이 푸시킨이다. 하지만 실제로 러시아에서 사람을 부를 때에는 성을 부르지 않고 이름과 부칭으로만 부른다고 한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상대방의 성을 부르는 것은 큰 실례라고 하니 러시아 사람을 만날 때에는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복잡한 이름의 구조 뿐만 아니라, 러시아 이름 특유의 애칭 역시 골치아프다. 러시아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름은 그 수가 한정적이고, 따라서 그 한정적인 이름에 각각 애칭이 "정해져"있어서, 러시아 문학 작품 안에서 저자는 왠만해서는 애칭에 대한 사전 설명 없이 애칭과 본명을 섞어가며 서술한다. 러시아어 초급 책의 뒤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본 이름 - 애칭 대응표가 달려있으니 말 다했다.



<대위의 딸>을 쓴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




2.


" 혹시 세 번째 읽게 된다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테지요. "
- 푸슈킨의 친구 오도예프스키.. 갓 완성된 <대위의 딸>을 출간 전에 먼저 읽어보고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 관습에만 적응되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대위의 딸>. 그러나 마냥  가벼운 러브스토리로 읽기에는 왠지모를 찝찝함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위에 인용한, 푸슈킨의 친구였던 오도예프스키의 말도 이런 찝찝함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대위의 딸>은 키르기스 요새에 파견된 청년 장교 표트르 안드레비치와, 요새 사령관의 딸 마리야 이바노브나 사이의 사랑 이야기이다. 표트르와 마리야가 사랑을 키워갈 무렵, 농민 봉기인 '푸가초프의 난'이 키르기스 요새를 덮쳐 표트르는 푸가초프의 포로가 되고 마리야는 부모를 잃는다. 하지만 푸가초프는 전에 표트르 안드레비치의 은혜를 입은 일이 있어 두 사람은 친근한 사이가 된다. 푸가초프는 키르기스 요새의 함락으로 인해 푸가초프의 반란군의 포로가 된 표트르를 풀어준다. 그리고, 반란군과 진압군의 팽팽한 접전 중에 표트르 안드레비치는 푸가초프의 도움으로 연인의 목숨을 구한다. 한편, 위세를 떨치던 '푸가초프의 난'은 시간이 지나 결국 진압되고, 표트르와 마리야 연인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동료이자 연적인 시바브린의 밀고로 표트르는 반역자라는 모함을 받아 러시아군에게 끌려가게 된다. 사건이 잠시 비극으로 치닫는 양상을 보이지만 결국 마리야가 직접 러시아의 여제를 만나 호소하고, 표트르를 구출해낸다.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도 괜찮을 것 같지만, 푸시킨은 말미에 푸가초프의 처형 장면을 첨가했다. 표트르 안드레예비치는 마리야 이바노브나의 도움으로 누명을 벗고 자유의 몸이 된 이후 푸가초프의 처형장에 가는 것이다. 푸가초프는 처형장에서 표트르를 알아보고 옛 우정과 추억을 함께한다는 의미로 표트르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표트르가 처형장에 간 것과 푸가초프가 표트르에게 고개를 끄덕인 것은 무슨 의미인 것인가? 물론 푸가초프는 사랑하는 사이를 갈라놓은 정말 나쁜 사람이지만, 정말 처형을 당해야 할 만큼 악독한 인물이었을까? 혹시 푸가초프는 부패와 부정의 극치를 달리던 차르 정권 말기의 희생자로 볼 수 있지는 않을까?



 

푸가초프(좌) 그리고 전봉준(우)



3.

사실 사회나 체제의 흐름에 농민들의 반항한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농민들은 FTA에 반대하고, 그 이전에는 WTO에 반대했으며, 60년대 70년대에는 정권이 구상하고 강요한 산업화 일변도의 국가 발전 모델 속에서 허덕였다. 그 아픔의 기원을 따라가다보면 한말의 '푸가초프의 난'인 동학농민운동과 마주치게 된다. 푸가초프와 마찬가지로 전봉준도 소외된 자들의 혁명을 꿈꾸었다. 푸가초프와 전봉준 모두에게 농민은 사회의 혼란 속에서 구석으로만 몰리고 있었던 불쌍한 사람들이었고, 두 사람 모두 기꺼이 이들을 위해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두 혁명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두 혁명 지도자 역시 형장의 이슬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세상은 흘러간다. 그리고 세상에서 사람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점점 적어지고 있다. 푸가초프와 전봉준의 시대에는 농민이 세상의 낭떠러지로 몰린 자들이었지만, 60년대 70년대에는 공장의 공돌이, 공순이들이 낭떠러지로 몰렸으며, IMF의 세기말에는 중년의 회사원들과 갓 사회에 나온 앳된 성인들이 낭떠러지로 몰렸다. 그리고 이제는 대학생들과 명사 '대학생'의 미래형인 '비정규직' 역시 낭떠러지로 몰리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낭떠러지에 몰려 있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몰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낭떠러지로 몰아가는 사람도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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