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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guistics/번역학: 번역 아님 반역

거북목은 영어로 turtle neck이 아니다

by Feverish 2021. 5. 26.

 

 

'거북목'을 자연스러운 영어로 하면?
- Nerd neck 혹은 text neck

 

 

한 한의사가 거북목을 영어로 말하겠다고 단어 대 단어로 옮겨서 'turtle neck'했다. 그러나 turtle neck은 옷의 한 종류를 지칭하는 표현이고 거북목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북목을 영어로 하면 무엇인지 알아보자.

 

 

 

1. 거북 = turtle, 목 = neck ... 그럼 거북목은 turtle neck? NO!

 

한국어 표현을 구성하는 단어 하나하나를 영어로 옮기면 그것이 올바른 영어가 될 것이라는 건 대단한 착각이다. 육=six, 회=times 라고 하여 먹는 육회를 six times 라고 옮기는 것 등등 이미 그러한 사례를 누구나 충분히 보았을 것이므로 여기에서 다시 언급하지는 않겠다.

 

거북목을 turtle neck이라고 옮기는 것은 마치 육회를 six times라고 하는 것과 같다. 유튜브 "영국남자" 채널에 나온 한 한의사가 "거북목이 있으세요"라는 표현을 굳이 영어로 하겠다고 You have a turtle neck이라고 하였다.

 

거북목을 turtle neck이라고 말하는 무식한 한의사

 

 

 

한의사가 반드시 영어를 잘 할 필요는 없다. 잘하는 건 좋지만 영어 못한다고 비판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지껄이는 자만에 있다. 바로 뒤에는 자신의 한국어를 영어로 올바르게 옮겨줄 수 있는 Josh가 있었음에도 그를 철저히 무시한 것이다. 결국 우스꽝스러운 꼴을 만들고 만다. 또 이렇게 박제되어서 나를 포함한 여러사람들에게 조리돌림 당하고 있으니 결국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은 영어통번역 현장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통번역에서의 의미전달의 책임은 통번역사가 가진다. 그들은 대화당사자들이 오해없이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인데, 많은 '거만한' 한국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영어를 엄청 잘한다는 양 통번역사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나불거려서 소통을 그르친다. 저 한의사처럼 아예 어긋난 표현을 써서 오해를 사거나 불필요하게 예의없이 말하거나 혹은 스스로를 저능아로 만들겠단 심산인지 손짓발짓으로 소통을 하려고 들기도 한다. (그리고 불통의 책임을 통번역사에게 지우려고 하지)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현대인들의 고민, 거북목은 turtle neck이 아니다. "You have a turtle neck." 이라고 말한 한의사는 "거북목이 있으시네요"라고 말한 게 아니라, "목폴라가 하나 있으시네요"라고 말한 셈이다. turtleneck은 아래 그림과 같은 sweater의 한 종류를 말한다. 환절기에 turtleneck을 입으면 감기 예방에 도움이 된다. 디자인이 예쁜 목폴라의 경우 패션 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

 

 

 

Turtleneck sweater

 

 

2. 스마트폰 많이해서 생기는 거북목은 nerd neck / text neck / tech neck

 

한의사가 자만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거북목'을 단어 대 단어로 옮긴 것은, 거북목이라는 개념이 한국어에만, 한의학에만 있는 개념이고 영어에는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테고, 바로 이 부분을 자만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그럴리가 있는가?

 

"이 개념이 영어에도 있을텐데 나는 모르겠다." 싶으면, 그 개념을 풀어쓰거나 Josh에게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단어를 만들어내려는 심보는 "이 개념은 영어에는 없고 한국어에만/한의학에만 있을테니 내가 영어 단어를 만들어야지" 한 게 아닌가?

 

저 무식한 한의사가 보기엔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생기는 "거북목"이라는 개념은 당연히 영어에도 있다. '흔히 nerd 들이 가지고 있다' 해서 nerd neck이라고 부르거나, nerd가 가지는 별로 좋지않은 어의를 피하기 위해 비교적 중립적인 tech neck이라는 표현을 좀 공적인 맥락에서는 쓰기도 한다. 맥락중립적으로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은 text neck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문자/카톡 많이해서 생기는 것이라는 의미.

 

의학적 맥락이나 전문용어로서는 "forward head posture"라고 하지만, 한국어의 '거북목'이라는 비격식적인 의미와는 맞지 않는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이 쓴 블로그 포스팅을 믿을 수 없으면, 당장에 구글에서 nerd neck이나 tech neck을 검색해보라. 아래 결과는 내가 지금 tech neck을 검색해서 나온 이미지다. 

 

 

딱봐도 이거 거북목 말하는 거 아닌가?

 

 

3. 교훈

 

저 한의사의 자만함은 모국어가 한국어인 영어화자들이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 "저렇게 하면 안 된다" 라는 의미다. 현업에서 일하다보면 영어와 한국어의 개념체계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고민이 있다. 당연하다. 귀여운 다람쥐는 squirrel이 아니고 chipmunk이지만, 줄무늬다람쥐 말고 그냥 산에 들에 다니는 귀여운 쥐 종류의 동물들을 총칭할 때는 (즉 우리가 널리 '다람쥐'라고 부르는 개념어를 영어로 말할때는) chipmunk이 아니라 squirrel을 써야한다. 그게 비록 '청설모'라는 뜻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영어 학습자들, 그리고 영어와 한국어로 밥벌어먹고 사는 우리가 얻을 수 교훈이 두가지 있다.

 

첫째, 자만하지 말고 늘 겸손하게 배우자. 특히, 특정 대응 개념어가 즉각적으로 생각나지 않는다면 무조건 풀어써야 한다. (잘 모르거나 애매한 표현 풀어쓰는 것에 대해서는 이 링크에서도 언급함) 단어1과 단어2를 합쳐서 다른 대상을 지칭하는 단어3을 만드는 식의 조립성(compositionality)은 개별 언어 내에서만 작동하지, 결코! 언어를 넘나들며 적용되지는 않는다. 거북목이 tech neck이라는 걸 모른다면, "스마트폰 따위를 많이 쓰는 것이 원인이 되어 자세에서 목이 앞으로 구부정해졌다"고 말하면 될일이다. 만약 이렇게 풀어쓸 수 없다면 당신은 거북목이 뭔지 모른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둘째, 자신의 전문분야 (한의학이면 인체, 자세, 질환, 등등) 에 대해 영어로 된 글을 좀 읽자. 자세교정 전문이고 외국인 상대할 생각이 있다면 당연히 관심을 갖고 영어로 된 글들을 읽었어야 한다. 나같은 의학/한의학 과정 문턱에도 들어가보지 않은 사람도 tech neck 같은 표현이 당장에 떠오르는데, 스스로 그것을 전문분야라고 하는 사람이 그걸 못 떠올리면, 정말 정말로 문제 많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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