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파 가수를 좋아하는
좌빨은 어떠한가?
이것은 전에 내가 남겼던 싸이월드 다이어리 글에, 친구 기봉이 달아준 리플에 대한 피드백이다.
(덧, 이 글을 작성하던 도중, 아는 사람의 블로그에서 시이나링고 관련 포스팅을 발견해서 그것을 트랙백으로 건다)
1. 어느 일본가수, 이념 성향을 고백하다?
시이나 링고(椎名林檎)는 솔로 활동과 밴드 <도쿄지헨(東京事變)>의 보컬(사실상 리더)을 겸직하고 있는 일본의 가수이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이 있고, 국내의 많은 아티스트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음악적인 부분을 떠나서, 국내에서 얼마 전부터 시이나 링고를 얘기할 때 꼭 따라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링고가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국수주의적 - 극우적 - 이념 지향이다.
그렇다. 링고는 소위 '일본 극우파 가수'이다. 2008년 있었던 데뷔 1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욱일승천기를 흔들고, 이번에 발매한 새 음반에도 극우적 성향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물론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링고의 음악(특히 음악 자체보다는 공연 영상이나 PV영상 등) 컨텐츠들로부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라든지, 전체주의 지향의 모습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변명을 하자면, 인간은 누구에게나 전체주의적인 모습에 대한 환상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 인민군이 발을 맞춰 걷는 모습'은 곧 '나쁜 것, 악한 것' 이라는 공식을 아무런 제한 없이 교육과정을 통해 주입시키는 한국이라는 맥락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DJ, 노무현의 자유주의 정권 10년 동안 '국기에 대한 경례' 라든가 애국조회 따위의 전체주의적 잔재가 많이 청산되었음에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모두가 같은 동작을 하는 것을 보고 일정한 희열을 느낀다. 예컨대, 가볍게는 한 목소리와 행동으로 하는 응원이 그렇겠고, 아이돌 열댓 명이 나와서 똑같은 방향의 똑같은 춤 동작을 추는 것도 일정부분 그렇겠고, 무엇보다 매스게임에 눈길을 주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성향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겠다.
시이나 링고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일체화된 집단. 하나는 곧 전체, 전체는 곧 하나... 이러한 '취향'의 발현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뿐만 아니라 스타의 이러한 취향 발현 정도는 기꺼이 용인할 수 있다는 듯, 2008년 이전까지는 한국의 리스너들도 링고의 음악 외적인 표현에 대해서는, 특히 이념이라든가 사상적 지향에 대해서는 그닥 문제삼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2008년 데뷔 10주년 공연 'Ringo Expo 08'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일장기가 휘날리면서 얘기는 달라진다.
욱일승천기를 모델로 삼은 것이 분명한 이 깃발과 상징물을 팬들 모두에게 나눠주고 공연을 했다고 한다.
공연 실황 관련 유튜브 영상은 모두 삭제된 상황이다. 그러나 관련된 내용은 이 링크에서 확인 가능하다.
그리고, 2008년에 이어 2011년에 발표한 앨범의 PV(뮤직비디오)에서도 상당히 용감한 이념지향이 드러난다. '새로운 문명개화(新しい文明開化)'라는 제목부터 수상했지만, 영상을 보니 고의적으로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동영상은 도쿄지헨 2011년 앨범의 뮤직비디오.
약 2분 20초 이후 부분이 흔히 문제시된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바라보자면, 여러 사람들이 매스게임 하는 모습에 희열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욱일기를 흔들어대는 모습이라는 점에서는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2. 한국인의 내셔널리티로 링고의 이념을 바라볼 때에만.
일본 가수 시이나 링고의 극우적 이념적 성향 표출은 음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시이나 링고와 그녀의 밴드 도쿄지헨은, 국내의 20대 여성 음악인들이 칭송(!)하고 또 롤모델로 삼고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크다.
인디 씬의 오지은, 한희정, 시와,
밴드 롤러코스터 보컬 조원선,
그리고 음악인은 아니지만
배우 배두나, 공효진, 고아성 등이 "좋아하는 가수는 시이나 링고"라고 언급한 바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이것이 위험하다고 말을 못하겠다.
내가 대한민국 내셔널리티를 숭배하는 우파라면 분노하였겠지만, 나는 국수주의는 커녕 애국주의와도 거리가 먼 사람이고, 말하자면 '좌빨'이기 때문이다.
(물론, 본래 의미에서 좌파냐 우파냐를 말하라면 나는 우파에 가깝다. 고백하자면, 나는 현실적 공산주의가 지상에(특히 한국에) 실현되는 것이 가능할까에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내가 우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극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좌빨이라 불리니 이해하기 바란다.)
그리고 사상이니 무엇이니에 앞서 나는 최소한의 자유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고 한국은 그 기준에도 턱없이 모자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산주의에 앞서서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을 위험하다고 말하려면 그 전제로 음악 또는 기타 미디어에 노출되면 그 안에 있는 사상에 경도된다는 주장이 성립해야 하는데, 실상은 오히려 정 반대이기 때문이다.
시이나 링고의 우익적 성향을 가장 먼저 문제시한 것들은 다름 아닌 J-Pop 리스너들이고 시이나링고를 즐겨듣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의 주장처럼 시이나링고의 음악이 위험하다고 하려면 J-Pop 리스너들, 시이나 링고 리스너들이 링고를 비판할 게 아니라 앞장서서 일장기 흔들고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3. 팬심보다 애국심이 우선인가?
일본문화 팬들에게, 팬심보다 애국심이 우선인가? 방금 전까지 일드를 즐겁게 보다가도 뉴스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얘기라도 나온다 치면 분기탱천하고 일어나 일본을 욕하는 게 우리나라의 일본문화 팬의 본분이라도 되는가?
나는 오히려 이러한 당위를 부여하려는 생각이 위험하다고 본다.
ps. 그런데 극우파니 뭐니 하는 문제와 별도로, 시이나 링고의 2011년 음반이 국내에 수입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놓고 보았을 때 매우 아쉽다. 여성부가 굳건히 서있는 알흠다운 우리나라. =ㅅ=;
ps2. 이건 절대 극우파 노다 요시히코(野田 佳彦)가 신임 일본 총리가 되었기 때문에 올린 포스팅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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