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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guistics/언어학: 말들의 풍경

조선일보 전문가 서평 :: 2000년 3월 10일

by Feverish 2015. 1. 15.

[전문가 서평]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서구 제국주의'고발  


1492년(컬럼부스의 미 대륙 상륙) 시작된 유럽의 영토정복 역사는 끝났는가?  아니다. 주연급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로, 다시 영국으로 바뀌었을  뿐 학살과 약탈로 점철된 정복의 역사는 그 후로도 507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무대와 소품만이 바뀌었을 뿐이다.   오늘날 새로운 주연이 된 미국은 무대를 전세계로 넓혔을 뿐 아니라 매우  교묘하고도 악랄한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 가령 레이건은 인구가 겨우 10만인  그레나다가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무력침공을 감행했다. 소도 웃을  일이 아닌가. 쿠바에 대해서는 장장 170여 년이나 경제제재와 무력협박을  가하면서 갖은 구실을 댄다. 뿐만이 아니다. 전세계를 향해 투기자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국경은 개방하되 노동의 이동은 금지하도록 강요하면서  더욱 더 철저하게 시장의 정복을 꾀하고 있다. 무력의 동원이 세계의 따가운  이목을 받을 경우에는 부자를 위한 경제논리인 신자유주의를 앞세우고,  만만하게 보이는 나라에 대해서는 인권과 안보라는 구실을 들이대며 무력  침공도 감행한다. 도대체 미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IMF 사태를 겪으며 수탈을 당한 우리에게 1492년 이후 507년 정복의 실상과  그 의미는 과연 무엇이고, 대응책은 무엇인가? 미국 명문 대학인 MIT의  석좌교수이자 생존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으로 일컬어지는 노움 촘스키에게서  답을 찾는 것은 일견 아이러니처럼 보인다. 그가 미국인임을 일단 접어두자.  현대언어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저명한 언어학자라는 사실 때문에 의아해할  필요도 없다. 80여권의 저서와 천여 편의 논문들 대다수에서 그는 미국의  개입주의 대외정책과 언론의 심층구조와 표층구조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왔을  뿐 아니라, 미국의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 가장 신랄하고 끈질기게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출간된 그의 저서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는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그는 세 가지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먼저 그는 지난  507년에 걸쳐 서구 제국주의가 어떻게 제3세계의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을  정복하고 파괴했는가를 고발한다. 그에 따르면 단 200명도 안 되는 무리들이  잉카제국을 유린하고 500명의 해적이 멕시코를 파괴했다. 그는 또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결과의 공정한 분배를 핵심으로 하는 아담 스미스나 드  토크빌의 자유주의 사상을 배신하고 약육강식의 경제논리를 앞세우며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를 유린한 서구의 약탈사를 상기시키면서,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선택적으로 약자에게만 적용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촘스키는 최신의 각종 자료를 제시하면서 자본주의의 심장부이자 “가장  이상적 사회모델에 가까운” 미국 사회 내부에도 제3의 세계가 존재함을  고발한다. 국민의 83%가 경제체제가 불공정하다고 느끼고, 3천만 명이 굶주리는  미국 사회의 이중구조는 평화주의자이자 박애주의자로 알려진 카네기의  무자비한 노조탄압을 비롯한 미국 노동운동사의 슬픈 장면들과 연장선상에  있음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이웃과의 상의”를  통한 민중의 저항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대안적 사회 모델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일부의 비판에 대해 그는 추상적 술어들로 가득 찬 이론가들의 거대  담론이야말로 기존체제를 떠받치는 공범자임을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중앙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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