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7월 14일 조선일보에 게재된 짧은 칼럼이다. 조선일보 인터넷 사이트에서 더 이상 서비스해주지 않아, 웹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옮겨온다. 저작권을 침해할 의도는 없으며, 문제시 문의해주시면 처리하겠다. (덧: 장 교수님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유입이 조금 있었다. 댓글을 달아주면 비밀글로 아는 한도 내에서 답변을 달아주겠다. 하지만 나도 2018년 이후의 소식은 모른다.)
노암 촘스키의 언어학
과학적 엄밀성으로 학문 토대 마련
우리는 종종 한 석학의 업적을 대표작을 통해 이해하려는 경향이있다. 촘스키를 설명할 때의 어려움은 그의 대표 분야가 너무 다양하고, 그것들이 모두 중요하다는 점이다.촘스키를 보통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심리학, 철학, 인지 과학, 정치학 등에서 대단치 않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범위를 일단 언어학으로 좁혀 볼 때, 촘스키의 학문적 성과는 내용과 방법 양면에서 모두 탁월하다. 대서양 연안의 구조주의 언어학이 음운자료의 축적에 치중하고, 당대를 풍미하던 행동주의 심리학이 인간의 언어습득이 미끼로 비둘기 훈련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을 때, 촘스키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보편 언어설과 언어생득설을 주장했다. 수많은 현존 언어들이 겉으로는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그것들은 모두 보편 적속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촘스키가 말하는 보편언어란 현상으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자연 언어에 공통된 특성들의 집합을 뜻한다. 그의 주저인 '지배와 결속 이론 강의'(1981)는 언어의 보편원리와 매개변항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가령 한국어와 영어는 공동의 보편원리와 함께 서로 다른 매개변항을 가지고 있어서, 각각 후치사와 전치사, 목적어-동사 순서와 동사-목적어 순서, 절-접속사와 접속사-절의 순서를 가진다.
언어생득설은 인간이 언어능력을 타고 났다는 가설이다. 언어는 자극과 반응, 즉 훈련에 따른 행위일 뿐이라는 왓슨-스키너 등 행동주의 실험심리학자들의 주장을 촘스키는 단호히 배격한다. 그는 성인과 어린아이의 언어습득을 예로 든다. 성인은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도 잘 안되는데, 어린아이는 의식적 노력이나 훈련없이 주어진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게다가 어린이가 접하는 언어자료가 말더듬이 부모와 같이 열악한 경우라 하더라도, 정상적 부모에게서 자라난 아이와 언어습득상의 차이가 없다.
'플라톤의 문제'라 불리는 이러한 현상을 통해 촘스키는 언어생득설을 확신하게 된다. 두뇌 속에 장치된 언어습득 장치에 하나의 촉발장치로서 언어자료를 투여해 주면, 주어진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 충분한 영양과 조건이 주어지면 팔 다리가 성장하다가 일정 시기에 이르면 정지되는 것처럼, 언어능력도 일정한 조건만 충족되면 성장하다가 소위 한계시기(critical age)에 이르면 성장을 멈춘다.
촘스키 학문의 백미는 과학적 엄밀성에 있다. 명료성,단순성,대칭성, 엄밀성 등은 이미 '통사구조'(1955)에서 잘 드러나는데, 이 논문은 당시 출판계의 이해를 얻지 못해 20년 후에야 출판됐다. 물론 촘스키는 이런 자산들에 대한 지적 소유권을 플라톤, 데카르트, 에스페르센 등 이성주의 선배들에게로 돌린다. 엄밀성을 담보하기 위해 촘스키와 그의 동료들이 고안한 성분 통어, 변형, 생성, 심층구조와 표층구조 등은 이제 소쉬르의 랑그와 빠롤, 기표와 기의 등과 더불어 언어학의 기초이자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촘스키 언어학은 오늘날 다분히 추상화로 치달았고, 최근의 저서 '최소주의 프로그램'(1995)은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다. 그의 이론이 명료성과 엄밀성을 띠고 있으면서도 고도로 추상화된 이유는 그의 스타일이라기보다 그가 추구하는 주제의 속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1990년대 이전 촘스키 언어학이 언어습득과 보편언어의 증명을 추구했다면, 그 이후에는 인간 언어가 필수적으로 충족시켜야 할 생물학적 조건들이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셈이다. 자연과학과 달리 두뇌 연구는 직접적인 접근이 불가능하므로, 그 방법론은 간접적이고 추상적일 수 밖에 없다.
촘스키 언어학이 과연 성공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우리가 배울 것은 사물을 보는 그의 자세이다. 그는 가장 명백한 사실에도 놀랄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질 것을 권한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당연시했다면, 뉴턴의 만유인력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두살바기 어린아이가 짧은 시간에 의식적 노력도 없이 언어를 습득하는 것을 당연시했다면, 촘스키 언어학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감수성을 언어 뿐 아니라 우리의 주변, 즉 언론매체, 정부정책, 사회현상에도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우리 모두가 깨어서 예리한 감수성을 작동시킬 때 좋은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그는 믿기 때문이다.
( 중앙대 교수·영어학 ).
<장영준교수 약력> ▲1964년생 ▲고려대 영문과-대학원 석사, 하버드대언어학박사
▲ MIT 언어철학과 객원연구원 역임 ▲저서 '언어의 비밀'(1999), 역서 '촘스키, 끝없는 도전'(1999).
1999-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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