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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Life/책거리: 오늘

폴 오스터 장편소설 <선셋 파크> - 탕자가 집에 돌아오기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

by Feverish 2013. 4. 16.









폴 오스터 장편소설 <선셋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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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가 집에 돌아오기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






미국 소설가 폴 오스터(Paul Auster)의 오래된 신작 <선셋 파크Sunset Park>가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오래된 신인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오래된 신작이라는 말은 낯설기만 하다. 이게 다 '열린책들' 출판사 때문이다.) 2010년 11월에 출간된 300쪽 남짓의 책이 2년이 훌쩍 넘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출간되는 상황이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마침내 국내에 출간되었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리뷰를 남긴다. 



대체적인 플롯이나 작품분석은 다른 블로그에서 많이 다룰 것으로 보이므로, 본 포스팅에서는 신약성경 누가복음서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와 <선셋 파크>를 연결해보았다.



선셋 파크

저자
폴 오스터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3-03-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그 어떤 고통과 상처도 무의미하지는 않다!2010년 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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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린책들'의 게으름?

<선셋 파크>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작은 불만을 토로하고 가야겠다.


폴 오스터는 다작으로 유명한 작가다. 장편소설을 뚝딱 지어내기도 하고, 때때로 내는 소설 이외의 작품들(최근 나온 서간집 등)을 포함하면 꽤나 따라잡기 힘든 작가다. 모든 장편들이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오스터의 팬으로서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자면, 폴 오스터의 최근작은 <뉴욕 삼부작New York Trilogy> 내지는 <달의 궁전Moon Palace>과 같은 초기작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뉴욕 3부작 (양장)폴 오스터(Paul Au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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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폴 오스터(Paul Au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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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출판계의 사정은 잘 모른다. 그러나 폴 오스터(Paul Auster)의 소설을 국내에서는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독점적으로 번역, 출간한다는 사실은 알고있다. 그리고 열린책들은 <선셋 파크>가 미국에 출시(2010년 11월)된지 2년이 훌쩍 넘은 2013년 3월에야 이 책을 번역 출간했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흔히 하나의 언어의 기본문법을 익힐 수 있는 시간으로 본다. 다시말해서, 다소 극단적인 얘기지만, 영어를 모르는 폴 오스터의 팬이 영어를 배우고, 사전 찾아가며 <선셋 파크>를 더듬더듬 독해하는 게 '열린책들' 출판사의 번역을 기다리는 것보다 빠르다는 의미다.


단순히 <선셋 파크> 뿐만 아니다. 오스터가 2012년 8월에 낸 <Winter Journal>이라는 작품의 경우는 아직까지 국내에 번역 출간될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 '열린책들' 출판사는 오스터 작품을 독점적으로 국내에 소개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 대한 직무를 유기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열린책들' 출판사가 폴 오스터의 작품을 좀더 빨리 번역 출간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냥 팬의 입장에서...





2. 탕자의 비유


<선셋 파크>의 배경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무너진 미국 사회다. 그 배경 속에서 마일스는 아버지께로 돌아가고 있다. 소설을 덮는 순간 신약성경 중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떠올렸다. 다음은 '탕자의 비유' 인용.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재산 가운데서 내게 돌아올 몫을 내게 주십시오'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제 것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가서, 거기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낭비하였다. 그가 모든 것을 탕진했을 때에, 그 지방에 크게 흉년이 들어서, 그는 아주 궁핍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 지방의 주민 가운데 한 사람을 찾아가서, 몸을 의탁하였다. 그 사람은 그를 들로 보내서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좀 먹고 배를 채우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서, (...)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누가복음서 15장 11절 - 23절, 새번역)


복음서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는 철저히 제3자의 시점에서 사건을 묘사한다. 이것은 '탕자의 비유'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서사라기보다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절대적 사랑'을 설명하는 도구로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요에 따라 탕자의 내면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탕자가 집을 나가있는 사이에 아버지의 고민이라든가 탕자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고 있지 않다.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 2007 Rembrandt 





3. 부성애

<선셋 파크>에서의 마일스와 복음서의 '탕자'는 집을 나왔다가 돌아온다는 점, 그리고 아버지가 아들을 받아준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물론 마일스가 탕자처럼 방탕했는지는 생각해볼 문제지만 말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선셋 파크>에 묘사된 마일스 아버지의 모습이다. 마일스의 시점에서는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떠나왔다고 서술되지만, 소설 말미에 가면 사실 아버지가 마일스의 일거수일투족을 마일스의 친구인 '빙'으로부터 전해듣고, 때로는 마일스가 있는 곳 아주 가까운 곳까지 접근해서 마일스를 관찰하기도 한다.


아버지의 이러한 밀착 감시는, '탕자의 비유'의 배경이 되는 2천년 전 팔레스틴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21세기 기술 발달의 산물이다. 하지만 '탕자'의 아버지도, 마일스의 아버지와 심정은 같지 않았을까? 그러한 면에서 <선셋 파크>의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보편적인 부성애를 발견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 부성애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모습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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