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고난주간과 성삼일
-부활을 앞두는 신자들의 준비
2021년의 고난주간은 3월 29일부터 4월 3일까지입니다.
특히, 4월 1일(목), 2일(금) 그리고 3일(토)을 교회에서는 성삼일(聖三日)로 지킵니다.
1. 고난주간
고난주간은 부활절을 앞둔 사순절의 마지막 기간으로, 매년 날짜가 바뀝니다. 2021년에는 3월 29일(월)부터 4월 3일(토)까지가 고난주간입니다. 그리고 고난주간이 끝난 첫 새벽에 전 세계의 교회는 예수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고난주간 동안 신자들은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며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의 죽음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인지를 곱씹습니다. 부활절과 고난주간이 확정된 것은 기독교가 로마의 종교로 공인을 받은 기원후 4세기 이후의 일이지만, 그 이전의 초기 기독교에서도 고난주간과 부활절 새벽 전례의 원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세례를 앞둔 예비신자들이 기도와 절제로 일정 기간을 보내도록 했습니다. 세례를 받는 날까지 정진한 예비신자들은, 초기기독교 공동체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교리교육도 받았습니다. 디다케(didache) 공동체에서는 모세와 예수가 말한 '삶의 길'을 체화하도록 교육했으며, 바울(바오로)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공동체에서는 새신자들에게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의미를 가르쳤고, 그들이 예수의 자기비움(빌립보서 2장 5절- 11절. 새번역 / 개역개정)을 실천하도록 권면했습니다.
구체적인 세례 전례는 이렇게 진행됐습니다. 우선 예비신자가 마치 아기와 같이 발가벗겨진 채 물 속에 온전히 잠겼다가 물 밖으로 빼내지고, 이때 교회의 식구들은 이 새신자에게 흰옷을 새로 입혀줍니다. 물속에 오롯이 잠기는 과정 속에서 예비신자는 상징적 의미로 '사망'하고, 물 밖으로 나왔을 때 이 예비신자는 교회의 새로운 가족, 새신자로 '다시 태어나게'됩니다. 교회의 기존 구성원이 새신자에게 입혀주는 옷은, 마태복음서 22장 11절 - 13절 (새번역 / 개역개정)에 나오는 '구원의 증표로서의 예복'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러한 초기 기독교 세례과정의 원형은 고난주간과 부활절로 남아있습니다. 신자들은 마치 세례를 준비하는 예비신자와 같은 마음으로, 고난주간을 기도와 절제로 보내며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 마지막 행적을 다시 배웁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제정하신 성만찬을 재현하며,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신 예수님의 수난을 재현하며 기억합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이곳에서 더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 포스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부활절을 앞둔 성삼일에 대해 하루 하루씩 설명하겠습니다.
2. 고난주간의 목요일 (4월 1일): 성만찬의 제정
고난주간의 목요일은 예수가 성만찬을 제정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때의 성만찬은 "최후의 만찬"이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날 예수는 우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함께 식사를 하시며 성만찬을 제정하셨습니다. 이것을 본떠 교회에서도 사제나 목사가 신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행사를 하고 함께 성찬을 나눕니다. 가톨릭의 경우 사제가 12명의 신자의 발을 씻겨주는 행사를 하는 경우가 많고, 개신교의 경우 발을 씻겨주는 '세족례'대신 손을 씻겨주는 '세수례'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어로는 Maundy Thursday라고 하는데, 참고로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영어 제목이 Maundy Thursday였습니다.
성 목요일에 행하는 세족례는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오히려 높아지는 기독교 신앙의 모순이자 진리를 가장 잘 체화하는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개신교의 '목사'는 신자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역할을 받았으나, 이것이 곧 신자보다 우월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물론 목사안수를 받으실 때 '나는 신자보다 우월하다'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은 없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더께가 끼듯이 먼지가 쌓이듯이 나도 모르게 교만한 마음이 싹트지는 않았나 스스로 점검을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마치 종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처럼 스스로를 비우고 목사안수 받으실 때 다짐하셨을 섬김의 자세를 되새기시기 바랍니다.
한편 신자들도 '한시간 만이라도 깨어있을 수 없느냐'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이날은 한 시간만이라도 밤중에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고난주간의 금요일 (4월 2일): 예수께서 돌아가신 날
고난주간의 금요일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날로 기억하는 날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이날 금식을 하고 적어도 금육(고기를 먹지 않음)을 실시합니다. 교회에서는 이날,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예수의 죽음을 재현을 통해 되새기는 기억의 행사를 합니다. 가톨릭과 성공회의 경우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 수난기사를 사제들이 노래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며, 개신교에서는 연극을 하거나 신자들이 돌아가며 수난기사를 나누어 읽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행사들의 마지막에는 공히 예수의 죽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촛불을 포함한 모든 불을 끄고 침묵합니다. 통상적으로 행사를 마무리하는 음악은 없으며 신자들은 조용히 교회를 빠져나가거나 고요 속에서 묵상합니다.
기독교 전통의 국가들 (유럽 및 신대륙 국가들)에서는 이날을 공휴일로 제정하고 쉽니다.
4. 고난주간의 토요일 (4월 3일)
이 날은 사도전승(성경에 근거를 두지는 않으나 교회 전통 상 사도들의 가르침이라고 여겨지는 사항들)에 따라 예수님께서 저승까지 내려가셔서 죽음을 이기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교회는 하늘의 권좌에서 오신 예수께서 오직 지상 뿐만 아니라 사망의 심장부인 저승까지 내려가셔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것으로 믿습니다.
이날 교회에서는 별도의 행사를 거행하지 않으며, 해가 진 후에는 부활전야 행사를 진행합니다.
5. 부활전야 행사 (4월 3일 해진 후)
고난주간의 토요일 해가 진 후부터는 부활 전야에 해당하여 교회에서는 부활 전야 행사를 진행합니다. 앞서, 성삼일과 부활절의 원형이 예비신자의 세례 받는 과정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따라서, 부활전야 행사에 맞추어 세례를 받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가톨릭과 개신교 공히 이날 부활 전야 전례에서 새 신자들이 세례를 받으며, 새로 촛불을 켜거나 하기 때문에 '빛의 전례'라고도 불립니다.
경우에 따라 밤샘행사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6. 십자가의 길 (사순절 기간 중 수시로, 혹은 성삼일에 실시)
가톨릭의 경우 사순절 기간 금요일마다 예수가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는 과정을 7단계의 삽화로 나누어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The station of the cross)을 행하기도 하는데, 개신교에서는 흔하지 않습니다. 성공회의 경우 성삼일 기간 중 십자가의 길 전례를 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7. 복잡한 의례가 아닌 마음이 중요
상당히 긴 글이 되었습니다. 왜 부활을 앞두고 이렇게 복잡하고 세세한 전례가 필요한 걸까요? 이 모든 것은 예수의 수난을 최대한 세세하게 기억하려고 교회가 노력한 결과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예수를 직접 본 사람들이 먼저 눈을 감게 되면서 예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이 망각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마치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이 몸에 문신을 세긴 것처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각 장면들을 전례 속에 각인시켰습니다. 자칫 잘못되면 지나치게 형식화될 우려가 있지만, 그러한 우려를 불사하고서라도 교회는 기억해야 합니다.
소위 개혁주의 간판을 달고 있지만 실상은 사이비인 곳들에서는 이러한 기억의 노력을 가볍게 여기는 모습도 간혹 보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태생부터가 기억의 공동체입니다. 모세의 출애굽을 이스라엘 민족이 수천년간 재현하며 기억한 것처럼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 돌아가심, 부활 그리고 다시 오실 약속을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기억의 방법이 굳이 형식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빼놓지 않고 기억하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의 죽음을 반드시 기억하는 이유는, 예수가 로마제국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살해당했으나 하나님께서 그 예수를 일으켜세움으로써 제국 권력을 부정하셨음을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기억하지 않고 증언하지 않으면 증인이 아니겠지요?
아무쪼록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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