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Analytics
본문 바로가기
Book & Life/책거리: 오늘

크리스토프 코흐 <아날로그로 살아보기> - 너도 로그오프하면 나를 알 거야

by Feverish 2012. 7. 13.

 








크리스토프 코흐 <아날로그로 살아보기>
- 너도 로그오프하면 나를 알게 될 거야


 

게임중독 20대…PC방서 아기낳아 살해ㆍ유기
 
(서울=연합뉴스) 이슬기 기자 = 서울 송파경찰서는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낳은 아기를 비닐봉지에 넣어 숨지게 하고 유기한 혐의(영아살해 등)로 A(26ㆍ여)씨를 검거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지난달 25일 오전 9시25분께 송파구 모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진통을 느껴 화장실에서 남자아기를 낳은뒤 검은 비닐봉지에 영아를 넣어 입구를 막은 채로 PC방 건물 주차장 옆 화단에 버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지난 1월부터 출산한 날까지 송파구 내 PC방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온종일 게임만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출산직전까지 게임을 할 정도로 중독이었다"며 "게임하는 동안 양수가 터졌는지도 모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기사원문보기)

 


 

 

아날로그로 살아보기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크리스토프 코흐(Christioph Koch) / 김정민역
출판 : 율리시즈 2011.09.08
상세보기

 


1. 로그인? 어쩌면 속박으로의 로그인

불과 15년 전에만 하더라도, 위의 기사를 통해 볼 수 있는 이런 디스토피아의 세상을 상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아마 사람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나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수업을 듣는 세상을 꿈꾸었을지언정, 게임중독자가 게임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아기를 낳고, 통금도 아닌게 밤 10시만 되면 청소년들을 PC방에서 쫓아내고(물론 그들이 집으로 가는 것 같지는 않지만), 게임중독자의 아기가 1. 화장실에 버려지거나 2. 버려지지 않더라도 돌봄을 받지 못해 굶어죽거나 3. 대부분 다른 집으로 입양되고 마는 세상을 꿈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현실이다.

 

 

내 친구 중에 도반이라는 아이가 있다.(도반은 불교용어라는데, 사실 이 친구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다) 이 친구는 자조적인 말투로 자신을 '페북좌파'라고 칭한다. 종북좌파의 아류같다고 농을 던지다가도, 납득이 간다. 이 친구, 정말 오랜만에 나를 본 자리에서도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다. 더욱 신기한 것은, 나와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을 실시간으로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단지 페이스북만 하기위해 밧데리를 하나 더 가지고 다니는 이 친구에 대해 오해를 하기도 했지만, 페이스북 중독증만 제외하고는 정말 좋은 친구다. (그러니 도반아, 혹시 니 이름을 포털에 쳤다가 이 글을 보게되더라도 화를 내지는 말거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 자신을 놓고 보더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페이스북 싸이월드 미투데이 트위터... 를 동시 가동하고, 스마트폰 구입 이후에는 페이스북에 늘어놓는 잡소리가 나날이 늘어가기만 한다. 페이스북 뉴스피드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닫는 일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마트폰을 구입한 것도 나 자신이고, 페이스북에 가입하고 글을 올리고 다른 사람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다른 사람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하는 것인데,

 

 

'속박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디지털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이유도 이런 속박감에서 오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강제적으로 인터넷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를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향린교회는 지난 사순절에 '인터넷 단식'을 시도했고, SBS에서는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강제로 로그오프 시키는 실험을 '자행'한 후 이 내용을 "달콤한 로그아웃, 아날로그 날다"라는 다큐로 만들어 방송했다.[각주:1]

 

 

<아날로그로 살아보기> 역시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었다




2. <아날로그로 살아보기>는 유쾌한 여행기

<아날로그로 살아보기>는 유쾌한 여행기와 같은 책이었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들로부터 로그오프하여야 갈 수 있는 '아날로그 세상'으로 떠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매뉴얼 같기도 했다.

 

 

단지 인터넷에 연결하기 위해 과도한 비용을 들이는 자신을 보고 로그오프하기로 결심한 저자는, 그 후 40일 간 이어진 아날로그 여정 동안 소소한 경험과 에피소드들을 재미있게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틈틈이 유명한 학자들의 견해와 이론적인 설명을 덧붙여 유익한 독서를 유도했다. 

 

 

저자가 소개한 에피소드들은 기차여행 도중 창밖에 보이는 낯선 여행지의 풍경과 같이 느껴졌다. 에피소드 중에서 하나만 옮겨오자면 다음과 같다.

"차가운 바람이 강타하는 거리를 걸어 지하철 역 맞은편 벽돌 빌라에 도착했다. 이곳은 오늘밤 행사(출판기념회)를 위해 출판사가 빌려놓은 곳이었다. (...) 입구는 열려 있었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인기척도 없다. 그렇다, 일단 이곳엔 사람의 온기란 게 없다. 나는 먼저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역시나 이런 날은 항상 미리 도착해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대략 15분 정도 일찍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손님들이야 제 시각에 맞춰 온다고 하더라도 행사 주최자마저 시간에 딱 맞춰 오나? 이 커다랗고 우아한 공간에는 은은한 조명이 밝혀져 있고 의자도 정렬되어 있었다. 또 부엌도 따로 있었는데 장을 보아놓은 듯한 장바구니도 여러 개 세워져 있었다. (...) 약속시간이 다 되어버린 지금은 아무런 의욕이 없다. (...) 보통의 경우라면 아르민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을 것이다. 대체 어찌 된 일이냐고. 그러나 지금 휴대전화가 없기에 전화도 할 수 없고, 혹시나 날짜가 연기된 것인지 아니면 모든 참석자가 갑자기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미스터리한 상황에 빠진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탁자 위에서 메모지 한 장을 발견했다. 메모지엔 음료와 식재료 등, 장을 봐야 할 목록이 적혀 있었는데 거기서 내게 딱 필요한 흥미로운 단서를 하나 발견했다. 아르민의 이름과 함께 내일로 예정된 행사 날짜."

(크리스토프 코흐, <아날로그로 살아보기> 145p - 146p)

 

한편, 저자는 이러한 재미 사이 사이에 유익한 정보를 잊지 않았다. 여행기에 각 챕터에 부록으로 실려있는 역사적, 문화적 정보라든가 여행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빼곡하게 글이 적히 표지판과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요소가 없었더라면 이 책은 과감하게 인터넷과 핸드폰으로부터 단절된 생활을 한 자기의 경험을 자랑하는 데에 그쳤을지도 모를 것이다. 




3. 떠나봐야 나를 알게 될 거야

숲 속에서는 숲이 보이지 않는다. 단지 나무만이 보일 뿐이다. 숲을 보려면 일단 숲에서 나가야 한다.

 

 

온라인 역시 마찬가지다. 30일차 부분에서 볼 수 있는 인터넷 호텔 예약의 허상이라든가, 36일차에서 볼 수 있는 인터넷 인간관계의 허상에 대한 서술은 숲 밖에서 바라본 숲의 모습이라고 하고 싶다. 또한 개인적으로 아날로그로 살아보게 된 이후에야 진정한 집중을 할 수 있었다는 부분에서 많이 공감했다.

 

 

"매일 인터넷 금단증상이 줄어들고 있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 뭔가를 빼먹은 듯 허전한 느낌이 줄어들고 있다. 휴대전화 소리나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는 '핑'하는 신호음도 점점 잊어가고 있다. 원고를 쓸 때는 원고를 쓰고, 책을 읽을 때는 그저 책을 읽는다."

(크리스토프 코흐, <아날로그로 살아보기> 101p)

 

이와 같은 인터넷의 뒷면은 인터넷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보다 앞서 아날로그라는 잊혀진 대륙 아틀란티스를 다녀온 저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4. 조금의 아쉬움

나는 저자 소개와 간단한 책 설명이 적혀 있는 책날개를 읽고나자, 이 책이 만만한 책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스마트한 세상의 삶 vs 아날로그적 삶'에 대하여 저자가 인터뷰한 이 시대의 최고 지성들 (!)
 
마크 주커버그(페이스북의 창시자), 클레이 셔키(뉴욕 대학 교수, 뉴미디어 연구), 고든 헴튼(음향 생태학자, <한평의 고요>의 저자), 자크 펭크셉(신경과학자, 워싱턴 대학 교수), 조슈아 기딩(뉴욕 대학 교수, <실패>의 저자), 크리스안네 아이헨베르크(심리학자, 쾰른 대학 교수), 사샤 로보(파워 블로거, <디지털 보헤미안>의 저자), 로빈 던바(인류학자), 로버트 레빈(심리학자)

 

 

 

'세상에! 40일동안 무척 바빴겠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무척 기대가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페이스북에 회의감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크 주커버그에게 SNS의 폐해와 오프라인 삶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대부분의 인터뷰는 저자가 과거에 한 것들이고,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사용했던 실험 이전의 삶을 회상하는 부분에서 언급되는 형식으로 나온다. 다시 말해서, 40일 간의 아날로그 생활 기간동안, 이 책만을 위해, 저자가 리스트 상의 모든 인물들과 인터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저자, 편집자, 한국 출판사, 아니면 누가 됐든, 그 사람이 "아날로그 삶에 대해 저자가 인터뷰한.." 이라는 문구를 책날개에 삽입하여 독자들을 낚은 것이다!

 

 

이 책에서 마크 주커버그는 단지 SNS 상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만 조금 말했을 따름이며(136p), 고든 헴튼은 스마트한 기기에서 떠난 삶이 아닌 "시끄러운" 현대문명에서 떠난 삶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따름이다(149p).

 

 

또, 번역에 대해서도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한마디로 번역자를 잘못 선택한 것이다. (나는 독일어 번역을 하고, 동시에 스마트한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이토록 적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 번역가는 이 책을 번역하기 시작했을 당시 스마트한 라이프를 살고 있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이런 된장! 내겐 스마트폰이 없잖아"(278p) 대부분의 책임감 있는 번역가들은 원고를 받은 후가 아닌 받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한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책임하게 원고를 받았고 번역을 한 것이다.

 

 

번역가는 책 저자의 120%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번역가는 저자의 80%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적어도 스마트 라이프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follower를 '팔로어' 또는 '팔로워'가 아닌 '팔로우어'라고 번역하는 웃기지도 않는 만행을 저질렀고(지금 당장 네이버에 '팔로우어'라고 검색해보아라 이말은 한국어에서 쓰지 않는 말이다) unfriend(페이스북에서 친구 끊는 행위)를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이라고 번역했다. 게다가 RPG게임이라는 단어가 번역가 자신에게는 너무나 낯설었는지 "역할게임"이라고 풀어써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실 역할게임-역할놀이-는 RPG게임이 아니라 아동들이 장난감 청진기로 의사놀이를 하는 그런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물론, 단순히 급하게 번역하다가 저지른 실수도 많은 것 같지만 너그럽게 넘어가고 싶다. (이를테면, 99p에서 감옥에서 춤추는 사람은 '레디오 가가'가 아니라 '레이디 가가'였을 것이다) 


5. 아주 가끔, 로그로프하자. 온라인으로부터의 휴가 (마무리)

지금 당장 인터넷이 없어진다면 어떨까? 우선, 네이버 뉴스를 보지도 못할 것이고, 페이스북, 싸이월드, 미투데이에 접속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당장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울지도 모르겠다. (나도 적잖이 인터넷 중독인가보다) 무엇보다 달궁에 접속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 인용된 파워블로거 사샤 로보의 말처럼 인터넷을 끊는다는 것은 신발을 신지 않겠다는 말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밖에 다닐 때 계속 신발을 신고 다니지만 우리는 신발을 신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따위는 하지 않는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인터넷을 할 뿐이고 그걸로 끝.
 


하지만 24시간 신발을 신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침대에 올라갈 때에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게 좋고, 신발에 흙먼지가 많이 묻었을 때에는 집에 들어오기 전에 털고 들어오는 것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저자가 말하는 '오프라인 토요일'이 좋은 생각이라고 본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물론 다른 이야기겠지만.
   

  1. 2011년 12월 11일 자로 "SBS 스페셜"로 방영. 관련 자료는 http://netv.sbs.co.kr/player/netv_player.jsp?uccid=10001187944&cooper=NAVER [본문으로]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