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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ity/기독교: 신앙고백

지금, 여기의 언어로 말씀하시는 주님 1 - 일상어로 성경읽기

by Feverish 2012. 4. 4.

지금, 여기의 언어로 말씀하시는 주님 1
- 일상어로 성경읽기


개신교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성경은 <개역개정>판입니다.

 

<개역개정>은 1950년대에 출간된 <개역한글>을 개정하여 1998년 출간되었고, 2000년대 이후에 들어와서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성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개역개정>은 <개역한글>의 큰틀에서 과도한 한자어나 맞춤법 수정 등 매우 소극적인 개정만을 실시하였고, 그 <개역한글>조차 1938년 판 <개역>을 일부 수정하는 데에서 그친 것이기 때문에, <개역개정>에 나오는 예수의 어투는 사실상 1930-40년대 시점의 한국어나 다름 없습니다.

 

80년이 지난 현재, 한국어 화자들의 언어생활은 많이 바뀌었지만, 개역개정판 성경 속에 인물들은 여전히 일제시대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대어로 쓰여진 성경이 다수 존재하기는 하지만 예배용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무척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포스팅은 <개역개정>의 대안으로 현대어 성경 역본을 소개하려는 것입니다.

 

 

 



1. 성경의 권위는 어디까지? - 성경무오설(축자영감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신앙의 잣대이자 삶의 올바른 지침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지는 권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혹자는 성경을 문자 그 자체로 믿습니다. 성경의 텍스트는 모두 하나님의 직접 개입으로 작성된 것이라는 이러한 생각은 성경무오설 혹은 축자영감설이라고 부릅니다.

성경무오설 주장자들은 디모데후서 3장 16절(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 베드로후서 1장 21절 등을 주장의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서 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21절, 새번역)

 

 


램브란트의 유화 <The Evangelist Matthew Inspired by an Angel>

 

물론, 성경무오설 내부에도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성경무오설은 하나같이 매우 근본주의적인 입장입니다. 사실 축자영감설은 교회 내부에서도 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성경 내부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역사적 서술이 존재하고, 도대체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작성된 원본 '성경'이 어디에 있는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현재 우리가 보는 성경은 하나의 공인된 원본을 찾을 수 없고 다만 파피루스에 작성된 여러 고대 문서들을 참고하여 가장 신뢰성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특히, 성경무오설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은, 기존에 교회 내에 있는 권력을 유지하고 주님의 말씀을 독점하려는 사람들에게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중세 가톨릭은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해놓고 그것을 해독할 수 있는 성직자들이 말씀을 독점했습니다)

 

목회자가 아닌 일반적인 신도, 그리고 성경에 대한 고민이 없는 일부 목회자들에게 '성경'은, 누런 파피루스 위에 알 수 없는 히브리어 혹은 고대 그리스어로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흰 종이 위에 말끔한 글씨로 써 있는 <개역개정>, 가톨릭 <성서>, <새번역>, <공동번역> 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전하고 이를 보존하는, 교회 내에서 권위를 가진 이들이(즉, 목회자나 신학자들이) 검은 가죽표지에 흰 종이로 한글이 적혀있는 책 - 소위, '성경책' - 을 들어보이며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작성하셨고, 따라서 권위가 있는 성경이다"라고 말하면 평신도들은 다만 "아멘"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개신교의 일부 몰지각한 성직자분들께서는 이런 행태를 보이시기도 하나 봅니다.

 

그런데, 성경무오설은 엄밀히 말해서 번역본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번역본은 원본을 다른 언어로 옮긴 것에 불과한데, 번역본에 대해서도 성경무오설이 성립하려면, 성경 원본 작성은 물론 매 번역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직접 개입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것입니다. 또한 성경의 원본이 하나님의 개입으로 직접 작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그 원본을 확정할 수 없습니다. 혹자는 영국왕 제임스 1세의 명으로 번역된 어떤 사본이 바로 성경의 원본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2. 개신교의 정신은 성경을 쉽게 읽도록 하는 것

개신교는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종교입니다. 종교개혁은 당시 가톨릭이 보여준 부조리 속에서 일어난 혁명적인 종교 운동으로서 루터, 츠빙글리, 칼빈 등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종교개혁 과정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 것 중 하나는 바로 성경의 번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의 성경 번역은 저잣거리의 사람들까지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씌어졌습니다. 사실 성경, 특히 신약성경의 경우 4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묵시록(요한계시록)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초기 사도들이 일반인 성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로 쓴 '편지'들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개신교의 초기 성경 번역 정신은, 성경 원문의 작성, 그 자체에서 사도들이 보여준 정신을 대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은 당시 민중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이 완성되어 개신교회가 성립된 이후로도 개신교의 주류적인 성경번역의 형태는, 특수한 교육을 받은 성직자들이 겨우 이해할 정도의 보수적인 문장번역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의미 중심적인 - 즉 민중과 함께 시대와 호흡하는 - 번역입니다.

 

이는 첫걸음을 내딛던 한국 개신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한반도에 기독교가 들어왔던 19세기의 한국어는, 언어의 이중적인 구조가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즉, 지배계층은 여전히 한문해독능력을 가지고 한문을 사용했던 반면, 피지배계층에서는 한글과 현대한국말이 통용되었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선구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성경 번역을 한문으로 할 경우, 이득이 많았습니다. 중국에서 이미 성경번역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참고자료의 적용이 용이했고, 조선 영정조 통치 시기 이후 양반 일부계층에서는 이미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었기 성경의 한문번역을 통한 양반계층의 선교도 쉬울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성경은 한글로 번역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당시에 이것은 혁명적이었습니다. 한글로 번역된 성경은 민중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나갔고,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고 회심하여 기독교도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한글로 작성된 성경을 통해 이 땅에 예수의 도가 번창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 외적으로는,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인사들의 종교 중에서 개신교가 다수를 차지하고, 교회 내적으로는 평양 대부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1938년, 대대적인 성경 번역 작업의 완성으로 한국의 개신교회는 그 때부터 <개역>이라는 하나의 성경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개역>이 아무리 훌륭한 번역일지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일반대중과 멀어졌음은 사실입니다. <개역>은 80년이 지난 현재까지 맞춤법과 일부 어휘의 수정을 거쳐 개신교회 강단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역의 신학적 정확성에 대해서는 일단 차치하고, <개역>의 문체는 현대 민중들이 무리없이 이해하기에는 곤란하게 되었음은 확실합니다.[각주:1]  80년 동안 우리는 역사적 격변을 겪었고, 한국어 또한 이 격변의 소산으로 많이 변화한 것이 사실입니다.

 

- 문장부호의 사용 : <개역>이 출간된 1938년에는 현대와는달리 마침표, 쉼표 등의 문장부호가 사용되지 않았음

- 어투의 변화 : "...지니라" / "...하니라" 등은 이제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음.

- 어휘의 변화 : 구개음화로 어두 ㄷ/ㅌ 가 많은 경우 ㅈ/ㅊ 로 변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대(낙타), 후사(상속자), 훤화(시끄럽게 떠듦) 등의 어휘를 사용하지 않게 됨.

 

이중 어휘의 변화는 <개역한글>, <개역개정>을 통해 해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부분은 개정되지 않고 있어서 일반 대중들의 성경 이해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는 개신교의 본래 성경 번역 정신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민중이 읽기 버거운 성경 번역의 유지는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로마서 10장 17절, 새번역)라고 말한 사도 바울의 증언에도 배치됩니다. 그러나 교회내에서 이미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개역>의 번역 이외에 다른 번역을 상상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혹자는 <개역> 계열의 성경을 놓고 성경무오설을 주장하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3. 지금, 여기에 언어로 말씀하시는 주님

물론 한국 개신교계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현대 한국어를 찾아주려는 노력은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공동번역>, <새번역> 그리고 성경을 출간하는 출판사별로 각기 내놓은 풀어쓴 성경 들이 이러한 노력의 열매입니다.

 

특히 주목할만한 부분은 79년에 출간된 <공동번역성서>라는 역본인데, 이것은 가톨릭과 개신교 양측이 같은 성경을 사용해보자는 에큐메니컬적인 생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문학적이고 감성적인 <공동번역성서>의 번역은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마음에 큰 감동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공동번역성서>는 북한에서도 사용하는 성경입니다. 기독교 격언 가운데 '합력(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로마서 8장 28절)는 말이 있습니다.[각주:2] <공동번역성서>야 말로 신.구교, 남.북한을 초월하여 합력하는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을 가장 잘 대표하는 성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번역> 본문 중 일부. '요한의 복음서'

 

 

 

그러나 현재 <공동번역성서>는 가톨릭과 개신교 양측에서 모두 쓰이지 않는 실정입니다. 보수적 개신교계에서는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어휘를 무분별하게 채택한 점과, 신학적으로 문제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을 지적하면서 <공동번역>을 거부했고, 가톨릭 측에서는 아예 자체적으로 새로 번역한 성서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현재 개신교계에서는 대한성공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의 '향린교회'가 <공동번역>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정교회의 표준성경이기도 합니다.

 

이곳을 클릭하시면 <공동번역>의 번역 지침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을 클릭하시면 <공동번역>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주목할 만한 현대 한국어 성경으로는, 성서공회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새번역> 성경도 있습니다. <개역>을 수정 및 교정하는 것이 아닌 전적으로 새로 번역하였기에 <새번역>이라고 이름붙인 것입니다. <새번역> 원문의 뜻을 최대한 우리말에 가깝게 표현함과 동시에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전혀 딴 뜻이 전달되거나 아무런 뜻도 없는 번역이 될 때에는 뜻을 살리는 번역을 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10대와 20대, 그리고 우리말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현대어로 번역한다는 원칙[각주:3] 하에 앞서 말한 개신교 성경 번역 정신에 충실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기존 <개역>에서 사용하던 성경적인 고유명사들 (하나님, 독생자, 인자, 홍해, 언약)을 그대로 보존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보수적 기독교계의 비판을 피하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새번역> 본문 중 일부. 창세기

 

그러나 <새번역>도 보수적 개신교계에서 냉대를 받았습니다.  

 

이곳을 클릭하시면 <새번역>의 번역지침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을 클릭하시면 <새번역>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4. 마무리와 요약

다른 종교와 차별화되는 기독교의 특징은 신이 인간 가운데로 내려와서 함께한다는 믿음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신이 인간들과 함께하며 개인과 공동체를 회복시키기 위해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내려왔다고 믿습니다.

 

경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은 인간에 대한 신의 아가페를 보여주기 위해 쓴러브레터입니다.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올 정도로 사람에게 한걸음 더 다가오시는 그분께서는 말씀을 하실 때에도 사람들이 실제 생활속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철학적 논리가 아닌 비유로 진리를 드러내셨고, 풍자와 해학으로 참뜻을 펼치셨습니다. 1930년대, 40년대의 <개역>은 당시 민중들이 생활속에서 사용하던 언어를 충분히 반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30년대 40년대에 사용하던 한국어는 이미 실생활 속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한국 교회에는 현대어 성경이 시급합니다. 예수와 그의 사도들이 전한 메시지는 시대에 맞는 언어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낡은 언어와 낡은 문장은 이들이 전하는 놀라운 메시지를 가로막는 족쇄입니다. 아무쪼록, 한국 교회에서 울려퍼지는 성경 속에서 예수님이 1930년대 조선인의 어투가 아니라 오늘날 한국인의 어투로 말씀하시기를 소망합니다.


  1. 곁가지로, <개역개정>판을 사용하는 일부 보수 교회의 목사들은 설교시간에 영어성경을 인용하여 "성경 본문에 나온 어떤 어휘가 영어 성경에서는 어떻게 써있다" 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외국어보다 우리말 성경이 이해하기 어렵하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2. <공동번역성서>에서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라고 풀어 번역하였습니다. [본문으로]
  3. http://www.bskorea.or.kr/about/owntrans/major/feature03.aspx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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