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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Life/책거리: 오늘

김영하 장편소설 <검은 꽃> - 100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헤매이는 한국인)

by Feverish 2011. 8. 29.




김영하 <검은 꽃>
100년 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Korean Diaspora)


근대화 과정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라는 주제에 대해 사람들은 '하와이 노동자 이민'을 많이 생각한다. 그러나 김영하의 <검은 꽃>은 하와이가 아닌 멕시코로 향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문학동네 김영하 컬렉션의 검은 꽃 표지

 

 

 

1. 김영하의 검은 꽃

 

작가 김영하

 

김영하 작가는 덤덤한 서술과 깔끔한 작법을 가지고 있는 소설가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다. 김영하의 초기작은 소설, 더 나아가 문단에 대한 문제의식이 서려 있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춘기 소설'의 색깔이 강하다. 시쳇말로 나쁘게 말하자면 중2병 소설이라고도 한다.

김영하의 <검은 꽃>은 이러한 이전의 김영하 소설과는 상이한 작품으로, 김영하 작가의 소설 중 가장 큰 시대적, 공간적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물론 <검은 꽃> 이후에도 이전의 김영하적인 작품이 한동안 이어졌지만, 분명 <검은 꽃>은 당시까지 책으로 나와있던 작가의 소설들과 비교하자면 일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검은 꽃>은 20세기 초, 대한제국 말에 멕시코로 노동 이민을 간 1천여 명의 이야기이다. 크게 나누어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 멕시코로 향하는 배
  2. 애니깽 농장
  3. 멕시코 혁명

 

그리고 이 소설은 각 덩어리 별로 다른 문제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그 중 '멕시코로 향하는 배'에 크게 주목했다. 이 부분은 신분질서의 타파와 성리학적 세계관의 파괴로 대표되는 전근대 질서의 붕괴를 나타내고 있어서, 한국사에서 일제시대와 6.25가 차지하는 역할과 유사했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이번 포스팅은 <검은 꽃>을 다시 읽으면서 보편성과 서술 등의 문제를 고민한 결과이다.

 

 

 

 

2. 김영하 없는 검은 꽃?

작가 황석영

 

작가 황석영은 소설 <검은 꽃>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김영하 작가만의 필치로 '숏컷의 스냅사진처럼' 툭툭 쳐내면서 나갔기 때문에
한 권으로 끝낼 수 있었다.

 

 

 

사실 <검은 꽃>은 위에 나눠놓은 것과 같이 세 덩어리가 각각 300장 단행본으로 총 3권으로 나와도 부족할 만큼 긴 역사와 많은 인물을 품고 있다. 지루한 대하소설로 흐를 수 있었을 그 멕시코 이민자 이야기에서 김영하는 최대한 군더더기를 제거했다.

그러나 제거된 군더더기는 곧장 독자들의 부담으로 작용했다. 감정선이 배제된 탓에 서술은 극도로 건조해졌고, '결국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았다'라는 최종 결론 부분에서는 허무함을 버릴 수가 없다. 소설 전체에서 일관되게 3인칭 시점을 유지하고 있지만, 초점이 계속 이동하는 탓에 '소설다운 진득한 맛이 없다'라는 일반 독자의 평도 많았다. 이것은 분명 동일한 시대를 조명한 다른 대하소설류 혹은 역사소설류와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덤덤하다 못해 냉소적이기까지 한 필체 때문에 책장을 넘기게 하는 서스펜스와 긴장감도 반감되었다는 평도 많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이러한 서술이 바로 김영하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영상 세대에게는 장면이 바로바로 바뀌고 깊이 파고들지 않는 김영하의 작품이, 장구한 서술과 과장된 표현의 대하소설들보다 쉽게 읽힌다.

문학작품을 대중적 인기라는 잣대로 평가하는 것에는 많은 오류가 있지만, 김영하의 <검은 꽃>은 과거를 소환해낸 소설 치고는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으며, 대중적 문학 치고는 높은 완성도를 지녔다. 35회 동인문학상은 바로 이점을 높이 사서 김영하 작가에게 시상한 것이 아닐까?

 

 

 

 

3. '이연수'는 김영하의 판타지 속 여성상?

 

웹툰이나 출판만화를 좀 많이 본 사람들은 작가가 누군지 모르더라도 만화를 읽다보면 적어도 작가의 성별 정도는 알 수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여성 작가의 만화에서 남자는 모두가 하나같이 게이들 같고, 남자 작가의 만화에서 여자는 모두 캔디같다는 것이다. 특히 남자 작가들이 그리는 학원물에서 여자는 더 없이 수동적으로 묘사된다. 남자 작가의 학원물에서 여자는 감정도, 선호도 없고 다만 이 남자 저 남자 사이에서 왔다갔다할 뿐이다.

남녀탐구생활이라는 코미디 코너가 몇 년 째 인기를 끌고 있는 것과 같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두꺼운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 평생을 살아도 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이성을 제대로 묘사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까?




소설을 읽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했던 인물이 있다. 바로 이연수. 황족 집안의 딸로 태어났지만,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신문명에 눈길을 돌린 인물이다.

집안 전체가 멕시코 이민을 결정하자, '그곳에는 남녀 차별이 없을 것이다. 나는 학교를 다니고 교회를 다니리라...' 등의 생각을 품는다. 한말과 일제시대의 지식인 계층의 신여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인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근대적 여성상을 품으려는 이연수의 포부는 단순히 생각에 그친다. 이연수는 수동적인 전근대적 여성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배 안에서도, 애니깽 농장에서도, 그 이후에도 이연수는 학구열을 높인다거나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이것을 아쉬워 하는 것은 작가가 이것을 의도한 것이 아니고, 단지 그의 초기작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의 연속일 뿐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사람들이 씻지도 못할 뿐더러 '토사물과 배설물들로 바닥이 미끌했고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던 배 안에서 이연수가 사향 냄새를 풍기며 뭇 남성의 애간장을 녹였다느니, 그 어떤 더러움으로도 씻어낼 수 없는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다느니 하는 묘사는 작가가 환상 속에 가지고 있는 여성상을 소설 속에 풀어놓은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이연수를 잘 살렸더라면 굉장한 캐릭터가 나올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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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출용 소설?

 

검은 꽃의 불어판 표지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은 프랑스어와 독일어 판을 포함해 여러 국가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검은 꽃>의 배경이 되는 멕시코 시장에도 스페인어로 진출했다. 관련 정보를 새창으로 열려면 여기) 위에서 제시된 것은 프랑스 시장에서 출간된 <검은 꽃>의 표지이다.



개인적으로 김영하는 수출용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김영하를 두고 '군대, 예비군 이야기는 절대 쓰지 않을 작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말은 김영하의 작품을 악의적으로 폄훼하려는 게 아니라 세계의 누구나 몰입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김영하의 소설을 평가하자는 의도이다.

<검은 꽃> 이전의 김영하의 초기작들은 <아랑은 왜>를 제외하고 대체로 현대인에 주목했다. 그러나 배경은 한국에 국한되었을지라도 그것을 한국인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작가의 그러한 이력을 놓고 보았을 때 <검은 꽃>이 차지하는 위치는 주목할 만 하다. 얼핏 보기에 이민사 소설인 <검은 꽃>은 한국사 속의, 한국인의 이야기라고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은 꽃>은 결코 한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일합방(1910)이전에 제물포를 떠난 1천여 명의 한국인들은 한국사의 흐름을 공유하지 못한다. 일단 이들을 한국이라는 틀에서 떼어놓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더없이 보편적인 인류의 이야기이다. 오히려 반만년 농경의 역사를 지닌 한민족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유랑하는 유목민들의 이야기이다. 내가 이 포스팅의 제목을 Korean Diaspora라고 지은 까닭은 그것이다. Diaspora는 본디 제 땅을 떠나 유랑하는 유대인들에 국한되는 단어였으나, 점차 의미의 외연이 확장된 것으로 알고 있다. <검은 꽃>은, 출판사의 PR 문구에서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 것과 같이 '운명이 부는 피리소리를 홀려 먼 곳까지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뱀이 준 사과를 먹은 이브 이래로 인류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이야깃거리다.

뿐만 아니라 초반에 나와있는 동아시아의 정세를 포함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모든 것들이 '서양사'에 집중되어 있다. <검은 꽃>은 정확히 동아시아가 처음 서양사에 편입된 시점(19세기말 제국주의) 부터 시작되어 세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바탕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오히려 멕시코 혁명사의 부분은 한국 독자들에게 멀게 느껴지는 느낌이 없지않다.

 

 

 

5. 질문 제기로만 끝나는 이유

<검은 꽃>은 몇 번을 읽어도 새롭게 읽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느껴지는 감정은 하나같다. 허무함. 그리고 허무의 공백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질문들이 있다. 그 질문은 대답되지 못하기 때문에 부족한 나의 감상은 질문 제기로밖에 끝날 수 없다. 답을 알아내고자 노력해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역사의 거친 흐름 속에서 산화되어버린 멕시코 이민자들을 기억하며, 사회의 물살 속에 휩쓸려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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