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Analytics
본문 바로가기
Book & Life/책거리: 오늘

김주희 장편소설 <피터팬 죽이기>

by Feverish 2011. 6. 16.








2004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김주희 장편소설 <피터팬 죽이기>를 다시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했던 때는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피부로 느끼기에는 솔직히 어린 나이였다. 당시 나는 <피터팬 죽이기>를 단지 성장소설로 한정지어 독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작품 중 인물들만큼이나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을 오랫동안 달고 있는 지금 다시 편 이 책은 나와 똑같은 현실을 살았던 나보다 조금 나이 많은 선배들의 이야기였다. 같은 작품이지만 성장한 독자에 의해 다시 독해되는 작품은 분명 다른 의미를 보유한다.


피터팬죽이기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김주희 (민음사, 2004년)
상세보기



커피 로고 아래 단결하는 90년대 학번…… 90년대 대학생들에 대한 복습

90년대 말에 대학교에 입학한 예규, 영길 그리고 승태(예규는 작품에서 96학번으로 나온다). IMF 전의 한국의 번영된 사회상 속에서 80년대 수차례의 홍역을 겪고 명목적으로나마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설렘의 공기가 대학가에 가득했던 시대에 대학생이 된 그들에게 97년 갑작스레 찾아온 IMF와 뒤 이은 신자유주의화는 냉혹한 찬바람과 같았다.

중고등학교 때 서태지를 접하고 대학에 온 90학번들은 80학번과도, 그 이전의 학번과도 달랐다. 그들은 파편화되고 개체화되어갔다. IMF의 찬바람에 맞서서 90년대 학번들은 짱돌을 드는 대신 각개전투를 택했다. 모두가 제 살길 이외에는 무관심해져 버린 90학번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과거의 운동권 서클도, 선동적 구호도 아니라 다만 ‘똑같은 테이크아웃 커피 점의 로고’다.

대운동장에서는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학원 자주화 투쟁을 하고 있었다. 투쟁이라고는 하나 절반은 빈자리였고 (...) 스피커에서는 대중가요가 흘러나왔다. 학생들 몇 명이 커피를 손에 들고 지나갔다. 얼굴은 제각각이었으나 종이컵에 찍힌 테이크아웃 커피점의 로고는 똑같았다. 학교 안의 소음에 무관심한 표정도 비슷했다



90년대 학번들, 극도로 무관심한 자유주의자들

 




방황하는 주인공들, 쉽게 말해 아웃사이더


열정을 식히고 표정을 감추고 토익, 자격증, 아르바이트로 제 갈 길을 찾는 90년대 학번들 사이에서 예규 영길 그리고 승태는 각자의 트라우마를 가진 채 꿈을 버리지 못하는 괴짜들이다.

예규의 트라우마는 어릴 적 왼쪽 눈을 야구공으로 맞은 것이다. 점점 예규의 시력을 앗아가는 이 야구공은 맥락 상 ‘현실’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시력을 잃어가면서 예규는 점차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고 결국 자살을 생각한다(물론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예규는 영길과는 달리 무작정 꿈을 향해 전력질주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승태처럼 어설프게나마 현실에 반응하려는 시도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현실과 이상 중 어느 방향으로도 열렬하지 못한 것이다. 소설을 쓰겠다는 이상을 가지고는 있지만 문학적으로는 제대로 해낸 것이 없다. 명목 상 국문과 대학원생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열정적인 학도라고 보기에도 힘들다.



예규, 영길, 승태 - 아웃사이더





반면 영길은 꿈을 향해서만 달리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 열정은 영길의 트라우마로 인해 왠지 모르게 절뚝거린다. 영길은 고등학교 시절, 사촌형이 자신의 바로 옆에서 자살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사촌형은 영길에게 병콜라를 사오게 한 후 영길과 함께 자신의 집 베란다로 가서 영길 바로 옆에서 혼자 떨어져 죽는다. 이 사건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영길은 한동안 미친 듯 베란다, 소년, 콜라를 그리는 데에만 열중한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영길의 상처는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이 모습은 사건 이후 콜라를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설 속 인물 설정으로 드러난다. 영길의 이 상처는 불쌍한 몰골로 승태가 다가왔을 때 덧나고 만다. 동아리방의 널브러진 승태, 임상실험 대상자이고 조만간 죽을 것이라는 승태는 죽음의 이미지를 불러왔고, 영길은 앞장서서 승태를 챙긴다. 영길은 끝까지 만화를 그린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만화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끝내 등단하지 못하고 입대하고 만다.


승태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사의 중심으로 들어오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첫 문장에서부터 끝까지 승태는 마치 유령처럼 서사의 주위를 떠돌고 있다. 임상실험 테스트 환자로 처음 등장하는 승태는 어눌하게 현실에 적응하고 있는 상처받은 영혼을 표상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외로움은 점차 위로 올라와. 외로움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면 기침이 나오고, 눈까지 올라오면 눈물이 나오지.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가면 죽는 거야. 외로움이 수류탄으로 변해서 내 몸을 폭파하니까


 


감상 외적인 것이지만, 열렬한 김영하 독자로서 개인적으로 <피터팬 죽이기>의 인물들 가운데 영길의 콜라 혐오증에 주목하였다. 영길이 콜라를 먹지 못하는 모습은 김영하의 명성작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가운데 등장하는 ‘홍콩 소녀’와 유사점이 있다. 두 인물 모두 콜라를 마시지 않고 그 증상의 원인 모두 과거의 트라우마이다. 영길의 경우 사촌형의 죽음, ‘홍콩 소녀’의 경우 과거 성폭행의 기억이 그것이다.





세대 간, 세대 내 갈등


<피터팬 죽이기>에는 세대 간, 세대 내 갈등이 두드러진다.
세대 간의 갈등은 영길과 ‘무명 선배’의 주먹다짐에서 절정을 이룬다.
88년 운동권 서클로 시작된 만화 동아리 ‘표현의 자유’는(이 동아리는 예규, 영길, 승태를 연결하는 고리이기도 하다) 10년 뒤, 일본 만화가 벽을 장식하고 기존의 NL적 기치를 상실한 모습으로 표류하고 있다. 현재의 동아리 모습에 이전 학번들은 혀를 찰 뿐이다.

나의 경우 80년대 학번들을 대학 학부생으로 만나본 경험이 없고 소설 내의 이러한 80-90 갈등은 간접적으로만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세대 간 갈등과 마찬가지로 묘사되고 있는 90년대 학번 내부의 갈등은 지금에까지 변치 않고 있다. 90년대 학번 가운데 일부는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값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나머지 일부는 예규 승태 영길의 무리처럼 방황한다. 방황하는 무리들 속에는 영길의 경우처럼 꿈을 찾아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예규와 같이 갈피를 못 잡는 사람들도 있고 승태처럼 현실과 어설프게 악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두 집단 사이의 갈등은 실제로 분명히 존재하고 소설 속에서도 묘사되어 있다.

예규 영길 승태가 방황자의 무리라면 이와 대별되는 무리에는 예규의 둘째 애인(공주님)과 피테쿠스가 속해있다. 두 무리 사이에서 비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갈등의 결과로 예규는 둘째 애인과 결별한다.

 

90년대 생 예규와 영길 - 이 소설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

이 소설이 출간된 지는 15년이 지났다. 소설에서는 90년대 학번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고, 책에서 눈을 들어 대학가를 보면 90년대 출생자들이 새내기로 들어와 있는 현실을 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분명 시간은 지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피처폰이 되었든 스마트폰이 되었든 15년 전의 우리나 오늘날의 우리나 모두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듯이.



소설 <피터팬 죽이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90년대 생의 예규와 영길은 지금 대학가 어디에선가 청춘의 방황을 하며 이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있으리라.

나는 이 책을 다시 정의한다. <피터팬 죽이기>는 성장 소설이 아닌 청춘 소설이라고.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