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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Life/책거리: 오늘

김사과 장편소설 <미나> - 미친 세상 속에서 방황하며 서로에게 상처주는 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의 이야기.

by Feverish 2011. 6. 2.





김사과의 <풀이 눕는다>가 출판되었을 때, 그 장편을 읽고, 또 그 장편을 둘러싼 논쟁을 살펴봄으로서 김사과 문학에 처음 참여하게 된 독자인 나는 이제 김사과의 첫 장편 <미나>를 덮으며, 감히 <미나> 이상의 문제작을 조만간 쉽게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미나>의 서사를 이야기해보자.



김사과의 문제작 <미나>는 P시의 젊은 영혼들이 미친 세상 속에서 자신의 내면적 고통을 서로에게 상처를 냄으로서 세상에 표출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서사는 미나와 민호 남매 그리고 미나를 애증하고 민호를 사랑하는 수정, 이 세명의 10대로 집중되고, 부차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미친'사회와 그 사회 속에서 P시의 고등학생들에게 강요되는 압력이 있다.


P시는 인문학을 박제하여 그 정신을 거세하며, 프로이트와 융의 저서는 문제집으로 바뀌고 '한 유명 학원장이 영어로 가득찬 문서를 내밀면 또다른 유명 학원장이 한자가 가득한 문서로 응수한다. 그들은 문서를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양주를 마시고 넥타이를 졸라매고 커프스단추를 잠그며 새로 생긴 술집의 정보를 교환한다.-24p'



이러한 흐름에 전면적으로 몸을 맡기는 수정과는 대조적으로 미나와 민호 남매는 부모로부터의 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아 이를 향유하는 인문학적 10대들이다(
'미나의 아버지가 도어즈를 들었고 그래서 미나도 도어즈를 들었다. 미나는 핑크 플로이드를 살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으니까. 미나는 아무것도 힘들게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책장에 가득 쌓인 책과 음반을 차례대로 빼내어서 가슴에 품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269p). 대중음악의 클래식을 찾아듣는 민호와 정신분석학을 위시한 인문학적 지적 흐름에 몸을 담그고 있는 미나, 이 두 인물은 '정신'을 이어받은 전형이다. 그러나 이상하다. 두 남매 가운데 여동생은 자신의 유일한 친구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민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웃는다.



그렇다고 P시가 강요하는 정신 거세와 경쟁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해버린 인물인 수정이 정답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수정은 이전 세대가 만들어낸 모든 것들을 멸시하고 단지 '어른들이 제시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여 순발력있게 흉내낼 뿐이다.-25p' 그녀에게는 죽은 친구를 위해 슬퍼해줄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적인 감정조차 남아있지 않다. 수정은 박지예의 자살 이후 감정적 동요를 보이고 슬퍼하는 미나의 모습을 관찰하고 신기하게 생각하고 그 감정의 발현을 질투한다.



사실, 수정은 처음부터 미나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미나는 결코 수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미나와 민호가 이전 세대의 문화적 유산을 이어받는 경로인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을 꺼내 각색하여 자신의 이야기(유리뱀의 이야기)하는 수정에게 미나는 "또라이"라고 할 뿐이다. 수정은 이 시점에서 미나의 목을 다시 조를까 하는 충동에 휩싸인다.







이 충동은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 결국 칼로 미나를 찌르는 행동으로 발전해나간다. 서사의 진행과정에서 '애정-질투-살인욕구'라는 일련의 사이클이 반복되고 박지예(미나의 친구)의 자살과 고양이 죽이기 등 일련의 장치를 통해 수정의 정신병적 행동은 확대 양상을 나타낸다. 단순히 미나를 대상으로 했던 수정의 파괴욕구는 점차 사회를 대상으로 확대된다.(오늘 나를 본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고 싶어. 그러려면 죽일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그래도, 나 해낼 거야. 그래. 금방 끝날 거야. 그러면, 그러면 민호야. 다 끝나고 나면, 호텔의 선데이 브런치 뷔페에 가자.(...) 나는 다 지워버릴 거야. 나는 여름이 정말 싫어. 없애버리고 싶어. 전세계 인구의 반이 사라지면 좋겠어.-239p // 오늘 수정은 답을 찾았다. '쓸데없는 책을 읽는 사람들은 다 죽여버려야 한다.' 별안간 수정은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책이라면 문제집만 빼고 다 필요없어. 다 불태워버려야 해.-271p) 이 과정에서 수정은 점차 정신병적인 인물로 변해간다. 그 모습은 자못 가공스럽기까지하다.



수정이 미나를 죽이는 장면, 그리고 마돈나의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피투성이의 미나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장면. 수정은 노래를 부른다. 이때 세 음절로 이루어진 달콤한 소리가 나며 현관문이 열리고 민호가 들어온다.


민호와 수정은 서로를 보고 웃고 하나의 시체 그리고 두 개의 웃음 그리고 셀 수 없는 어둠이 남았다, 라고 김사과는 마무리지었다.








 

<소설은 시대의 교양이 아닌 철저한 시대의 묘사를 지향>


여고생이 친구를 칼로 찔러 죽였다는, 항간에 회자되었던 사건에 대한 변명이라고 작가 스스로 평한 <미나>는 오히려 서사의 진행에 따라 비정상의 일로를 걸어가는 수정으로부터 독자들이 거리를 둘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놓고 사회의 모순을 소설을 빙자하여 마구 비판한다. 그것은 수정의 시선도 아니고 미나의 시선도 아니고 김사과의 시선이다.



학창생활은 일부 영리한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계급을 유지시킬, 혹은 좀더 향상시킬 기회를 제공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인식되며, 나머지 대부분의 학생에게는 대학교는 여기보다는 낫겠지 하며 인내하는 과정에 불과하며, 그 둘 사이에 끼어 길을 잃고 쓸데없는 것을 망상하며 우울증에 시달리는 학생은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된다. 그들이 자살에 이르는 것은 그들의 삶이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삶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어 자기가 죽고 싶다고 착각을 하거나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고 오해를 하기 때문이다.(25p)



소설 속 어느 인물에게도 귀속되지 않는 이러한 잡설이 소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어쩌면 이것은 서사의 진행을 보조하한다기에는 너무 과도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김사과는 특유의 균형감각으로 소설 전체가 사회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자신의 블로그가 되어버리지는 않도록 유지하며 서사에 집중한다.










<남은 이야기>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던 점은, 나의 학창시절이 너무나 무섭게도 수정과 닮아있었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3년을 내리 나는 수정과 같이 살아왔다. 다만 수정과 같은 길을 밟지 않았던 것은, 수정이 자신의 노력에 의해 공부를 포함한 모든 부분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그 어떤 것도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이룬 가운데 미나가 가진 그 무언가를 이루지 못한 수정은 미나를 증오하고 미나가 죽어야 한다고 억지로 당위성을 부여해버린다. 그에 비해 무엇하나 노력으로 이루지 못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열등감이 너무 강해서 다만 독기를 내 안에서 썩혀갔다. 수정은 문제 상황의 해결책으로 미나를 죽이려했지만 나는 나를 죽이려고 했다. 수정은 그것에서도 성공하여 문제 상황에서 탈출했지만, 나는 그것에서도 실패하여 문제 상황에서도 탈출하지 못했다. 고로 <미나>가 끝났어도 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또 불편했던 것은, 소설에서 눈을 떼고 밖을 보면 밖에는 P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오후 5시만 되면 거리를 가득 채우는 노랑 봉고차(나는 실제로 서로 다른 학원의 간판을 단 노랑 봉고차 5대가 연속으로 도로를 지나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교복을 입을 채 담배를 피며 거리를 걷는 고등학생들. 아무렇지도 않게 욕을 하는 초등학생들. 그들의 위로는 어디에 있을까? 교과서, 문제집을 통해 인풋만이 강요되고 나오는 경로는 철저하게 봉쇄당했던 그들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




미나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김사과 (창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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