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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Life/책거리: 오늘

존 M. 홉슨 <서구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 단절이 아닌 교류의 문명 이해

by Feverish 2011. 11. 14.





존 M. 홉슨 <서구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 단절이 아닌 교류의 문명 이해








1. 세계사는 ‘유럽화’의 역사인가?

역사학자 존 M. 홉슨이 쓴 문제작 <서구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는 기존의 서양 중심주의적 역사관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기존의 서양 중심적 사고는 서양이 고대 그리스 이후로 내적으로 달성해온 내재적 가치, 즉 합리성과 이성 등을 기반으로 1492년 경(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세계의 정상으로 우뚝 섰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 발견 시점을 기점으로 인류는 서구를 중심으로 최초의 세계화가 이루게 되었으며, 서구는 합리성과 이성을 비 서구에 전파함으로서 비 서구를 우매함과 궁핍 그리고 고통의 문제로부터 구출했다는 신화를 설파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역사적 사실(fact)을 열거하며 이러한 주장을 논파하였으며 균형 잡힌 세계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기원 후 500년 이후로 동서 간 직간접적 교류를 통해서 세계화가 이미 이루어져 있었으며, 서양은 자발적으로 성장하기는커녕 심지어 동양의 문명 전파를 받았고, 동양의 문명을 모방함으로서 동양 문명에 동화된 후, 19세기에 들어서는 제국주의를 무기로 동양의 경제적 자원을 도용하기에 이르렀다고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고 있다.




서양식의 옷을 입고, 서양식의 주거 환경 속에서 살고 있으며, 서양적 합리성의 산실인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나는 이상하게도 서구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양 중심의 역사관을 내재화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막연한 역사적 상식들이, 저자가 제시한 명백한 역사적 사실 앞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2. 우리가 쓴 가면을 벗자

서양인의 사고를 내재화하고 세계관조차 서양인의 그것으로 장착하고 있는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박노자는 <하얀 가면의 제국>에서 오리엔탈리즘이 한국 사회에서 발현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박노자는, 한국인과 한국 사회는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미화된 하얀 가면(서구적 실체)을 동경하며, 그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바라보려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잊을 만하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는 영어 공용화 문제와 관련하여, ‘영어 공용화가 들먹여질 정도이면 그것은 단순한 과잉 충성도 아니고 하얀 가면이 진짜 얼굴이 되기를 간절히 비는 (영미 중심의 서구 문명에 대한)광적인 맹종’이라고까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다.

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박노자
출판 : 한겨레출판 200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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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외부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결과인 박노자의 비판처럼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얀 가면을 쓰고 자신과 자신의 사회를 타자화하여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하얀 가면의 확대재생산이다. 다시 말하면, 기성세대가 자라나는 세대에게도 하얀 가면을 강요하고는 있는 것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 세계사 교과서를 살펴보면, 근대 이전까지의 역사 전체를 서술할 때, 동양의 역사, 서양의 역사 그리고 동남아시아 및 인도 지역의 역사를 분리하여 각각 단원 편성을 하였고, 심지어 소위 ‘신대륙’인 아메리카 대륙과 호주 대륙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양 중심주의 사관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서양 근대 의식의 제고와 폭력적 의미의 근대화에는 하나의 대단원을 부여하고 있다. 결국 동서양이 하나의 단원에 서술하며 두 주체 사이의 상호작용과 교류를 적극 소개하는 부분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이후로부터 현재까지로 한정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한국 최고의 지성이 모인다는 곳인 국립 서울대학교의 인문대학에서 역사 관련 학과는 국사학과, 서양사학과 그리고 동양사학과로 기형적인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서구 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에서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며 논증하는 것과 같이 인류는 고대로부터 동양과 서양의 개념 없이 그 경계를 넘나들며 교류해왔다. 동양사와 서양사를 구분하는 것은 서양 중심적 사고의 발현으로 동양의 역사를 타자화하는 개념이다. 서양 중심적 서구 비 서구 구분을 국가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워낼 최고 대학의 학부 구분에 무비판적으로 적용해 놓은 것은 황당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3. 단절이 아닌 교류의 문명 이해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유명한 수필가 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사실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국내도서>소설
저자 : 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 / 공경희역
출판 : 삼진기획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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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처럼 문명과 세계에 대한 인식 가운데 정말 중요한 것은 사실 유치원에서 배우는 <앞으로, 앞으로>라는 동요에서 발췌한 이 구절에 모두 들어있다. 인류가 등장한 이래로 지구에는 대륙이 새로 생겨나거나 누군가의 발견에 의해 존재하지 않았던 문명이 갑자기 존재하게 되는 일 따위는 없었다. 무인도가 아닌 바에야 완전히 고립되어 그 어느 외부와도 교류하지 않았던 문명 따위도 없었다. 단지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의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다. 중동 사람이 서쪽으로 가다가 어느 순간 마르마라 해를 넘으면 서양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사소한 진실은 원시시대에도 참이고 오늘도 참이다.


마르마라 해를 건너 지금의 이스탄불 땅을 점령한 이슬람교도들은 비잔티움 제국이 지은 聖 소피아 성당Aya Sofya의 아름다운 건축적 구조와 화려한 성화를 보았다. 그들은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고, 이곳에서 알라에게 예배를 드릴 생각을 했다. 정교회 성당이었던 소피아 성당을 모스크로 탈바꿈하기 위해 이슬람 점령자들이 한 일은 단지 이슬람 상징물들을 첨가하는 것뿐이었다. 따라서 지금 성 소피아에는 금빛의 아름다운 이콘icon 및 스테인드글라스 성화와 더불어 후기에 이슬람교도들이 첨가한 원형의 아랍어 문자가 아름답게 공존을 이루고 있다.

 

                                                            <개인 소유의 사진임으로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스러운 문명 교류의 모습이고, 인류는 세상에 나타난 이후 다른 문명을 가진 무리와 접촉했을 때마다 줄곧 이렇게 서로 융합하고 합쳐지며 살아왔다. 바로, 단절이 아닌 교류의 문명이다.
하지만 서구 중심주의적인 사고체계로 무장한 제국주의 열강은 서구와 비 서구 사이에 스스로 상정한 넘을 수 없는 가상의 벽을 사이에 두고 비 서구를 타자화했다. 동양과 서양을 각기 단절된 공간인 것처럼 인식한 것이다. 그리고 서구는 자신들이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계기로 그 벽을 뚫었다고 주장하며 비 서구로 접근해 소위 ‘근대화’와 ‘계몽’을 선도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행한 실상은 침략과 파괴 행위였을 따름이다. 서구의 방법만이 유일한 진보라고 주장했던 카를 마르크스도, 서양적 이성을 절대화해 자연스레 동양을 낙후된 세계로 인식했던 막스 베버도 이러한 서구 중심적인 사고체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들의 거대담론은 오히려 서양의 제국주의화를 부추긴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하얀 가면을 쓰는 데 완벽히 성공한 일본과, 그 일본에 이어 지금 하얀 가면을 쓰는 데 세계에서 가장 열심인 한국이 있다. 이러한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이기에, 분명 역사학적인 부분으로 논의를 한정하고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를 비판한 역사학 서적인 <서구 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를 덮는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을 찔린 듯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서구 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존M.홉슨 / 정경옥역
출판 : 에코리브르 200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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