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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guistics/번역학: 번역 아님 반역

우물쭈물하다 이렇게 오역한다 - 버나드 쇼 묘비명 오역

by Feverish 2020. 6. 23.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오역하다니!
- 버나드 쇼 묘비명 오역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보기좋게 오역이다. 대체 어디서 이런 오역이 나왔는지, 그리고 제대로 번역하면 무엇이 되는지 살펴보자.

 

 

 

흔히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알려진 번역

 

 

1. 원문은 아래와 같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아일랜드의 유명한 작가다. 사실, 그냥 유명한 게 아니라, 많은 평론가는 버나드 쇼를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극작가'라고 평하기도 한다. 극작품 '피그말리온'(Pygmalion)의 작가로도 유명한데, 해당 작품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마이페어레이디'(My Fair Lady)로 리메이크되기도 하였으며,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을 맡은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다


어찌됐든, 이 작가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든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물쭈물 살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로 번역되는 그 묘비명이 바로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되겠다.


그런데 이 묘비명의 원문을 보면, 이게 왜 우리말로 번역하면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가 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쇼 묘비명 원문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이다. 영어를 읽고 해석할 줄 아는 실력이 되는 사람이라면 절대 '우물쭈물~'이라고 번역하지는 않을 쉬운 문장이다. 즉, 누군지 몰라도 이걸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로 번역한 사람은, 의도적으로 오역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쇼의 묘비명이다

 

 

2. 이거 누가 번역한 거야?!

오역 문제의 발단은 이러하다. 2006년 당시 대한민국의 메이저 이동통신사인 KT (당시 KTF)는 '쇼'(show)라는 신규 브랜드의 런칭을 앞두고 있었고, 이전까지의 지루한 이동통신은 이제 죽어서 땅에 묻혔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묘지에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하는 티저 광고를 구상한다.


이 순간 마케팅 담당자는 한국어 화자들 사이에서 '쇼'(show)와 동음이의어인 '쇼'(Shaw)의 묘비명을 이용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사실 브랜드 show의 발음은 IPA로 [ʃoʊ] (GA, 미국식) 내지는 [ʃəʊ] (RP, 영국식)이지만, 그에 반해 작가 이름 Shaw는 [ʃɔ]로 발음된다.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르다. 브랜드할때 쇼(Show) 발음할 때보다 작가 이름 쇼(Shaw) 발음할 때 혀가 더 아래로 내려간다. 하지만 한국어로 옮겨적으면,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두 단어 모두 '쇼'[ɕ͈jo]로 표기한다.


어쨌든 이러한 생각의 결과가 아래의 광고다.

 

 

3. Stay around

위 광고에서 쇼 묘비명의 오역은 의도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우물쭈물 살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 묘비명의 원문인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광고에는 원문을 명시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의도는 명백하다.

 

 

어쨌든 광고가 파급되고 덩달아 오역도 파급 되었다. 그런데 대중들이 정말,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분명 쇼 묘비명에 대한 제대로 된 번역이 이전에 존재했을 것 같은데, 그건 잊어버리고 마케터가 의도적으로 오역한 문장을 기억해버린 것이다.

 

 

 

물론, 이정도까지는 아니고...

 

그렇다면 쇼의 묘비명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을 제대로 번역하면 어떤 말이 될까?


다양한 번역을 할 수 있겠지만(그 다양한 번역 중 하나를 이따가 소개할 것임) "정말 오래 버티면(나이들면) 이런 일(죽음) 생길 줄 내가 알았지!" 정도가 무난하겠다.


Stay around를 '정말 오래 버티다'로 의역해 보았는데, Oxford 사전은 Stay around를 to not leave somewhere로 풀이했다. Macmillan도 비슷하게 풀이하되, 굳이 장소가 아니더라도 사람 주위를 떠나지 않는 경우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용례는 Longman Dictionary도 동의하고 있고, 그것을 기초로 stay around와 stay with를 동의어로 처리하고 있다.

 


Oxford, Macmillan 그리고 Longman 사전에서 찾은 Stay around의 용례는 다음과 같다.

 


Most of her boyfriends don't stay around (=stay with her)very long. (Longman)
How long do you think Jason will stay around this time? (Macmillan)
I'll stay around in case you need me. (Oxford)
They didn't stay around to be caught. (Oxford)

 


말뭉치도 한번 보자. 미국영어의 대형 코퍼스인 COCA (Corpus of Contemporary American English) [링크]를 보면,

 


Stay around의 용례가 438회 등장한다 (stays around, stayed around 등의 형태 포함)

 

 

 

이미지를 클릭하면 커집니다

 

그 가운데, 강조표시 된 3번째 용례가 아마도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 나오는 stay around와 유사한 의미로 쓰인 것 같다.


"There's a lot of ways that people stay around, even after their lives are over."
(삶이 끝난 후에도 생명이 이어지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4. 오역의 유혹

이 묘비명에 대한 다른 견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번역가 이윤재 씨가 '우물쭈물~' 번역에 대해 오역 지적을 하며 동아일보에 <정확성이 생명 번역은 공학이다>라는 기고를 했는데, 이 번역은 타당성이 높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일리는 있다. [기고문 링크] [아카이브]

 

(...) 묘비명이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번역돼 우리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쇼는 전혀 이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다. 비문의 번역은 전혀 그답지 않다. 그는 실제로 우물쭈물한 사람도 아니었다.
묘비명의 원문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다. 번역하면 ‘나는 알았지. 무덤 근처에서 머물 만큼 머물면 이런 일(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이다.
 
비문이 오역된 것은 영어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 탓이다. around는 전치사적 부사(prepositional adverb)로 다음에 the tomb이 감추어져 있다.

 

 

번역을 할 때 정확성이 중요하다는 점에도 공감하고, 조지 버나드 쇼의 인생을 근거로 '쇼가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따능-' 식의 기고를 한 것도 인정.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게 두 가지 있다. 번역이 정확성을 중요시하는 만큼 번역투에는 겉멋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 뿐만 아니다. 일찍이 Eugene Nida는 번역에서 출발어와 도착어 사이에 등가(Equivalence)를 말했다. 이윤재 씨의 번역은 엄밀하게 말해서 원문과 등가(equivalent)를 이룬다고 보기가 어렵다. 나는 그 부분을 겉멋이라고 부른다.

 

 

 

이건 겉멋이 아니라, 그냥 정신이 없는 것이다

 

 

첫째, 이윤재 씨의 번역은 한국어의 통상 어순과 다른 어순을 가지고 있다. 시적인 효과를 의도한 것 같은데, 원문에서는 그런 효과를 찾기 어렵다. 번역을 할 때 창작자의 자부심을 갖는 것은 고무적이다. 번역자가 창작자의 열정으로 번역을 할 때 죽은 번역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창작자의 자부심이 과할 때, 그 번역자는 반역자가 된다. 물론, KTF 마케터들은 창작자의 자부심이 과했지만, 그사람들은 번역가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시적인 효과, 어순 지적하는 건 솔직히 오버고, 진짜 겉멋은 두번째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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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around를 전치사적 부사로 보고 the tomb이라는 명사가 생략되었다고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망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치사적 부사의 기본적인 문법은 네이버에서 검색하고, around는 부사로도 전치사로도 사용되는데 여기에서는 부사로 보는 게 타당하다. around를 전치사적 부사로 보려면 당연시되는 명사가 생략되었다고 가정해야 하는데, 충분한 맥락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the tomb이 당연히 생략되었다고 단정지을 근거가 희박하다. 더군다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stay around에서 around가 전치사로 쓰이지 않고, 즉, stay around 뒤에 명사가 나오지 않는 형태로 왕왕 사용된다는 측면을 생각해보았을 때, 일부러 본문에도 나타나지 않은 the tomb을 유추해서 번역에 도입할 근거는 더더욱 희박해진다. (물론 쇼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 "ㅇㅇ 그거 the tomb 생략한 것임"이라고 말하면 할 말 없고..)


어찌보면 이윤재 씨의 번역은, 오역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번역자들이 빠질 수 있는 오역의 유혹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윤재 씨는 모두의 기대에 힘입어 그 유혹에 살짝쿵 넘어가 주셨고) 첫째, 원문보다 나은 문장을 만들고자 원문에 없는 장치를 가져올 유혹에 빠진다. 둘째, 일반 대중도 원문을 어느 정도 해독할 수 있는 영어나 일본어를 업으로 번역하는 사람들의 경우 두드러지는데, 원문에는 있지도 않는 뭐시기가 함축되어 있다느니 생략되어 있다느니 자꾸만 드립을 치는 것이다. (늑대가 나타났다!!) 이것은 마치 제대로 된 길을 냅두고 이상한 길로 가면서 그 길이 지름길이라고 우기는 택시기사와 같다.


반역이 아닌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조심해야 한다. 소설가 김영하는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며 번역 작업을 "지뢰제거반"에 비유했다. KTF 마케터는 번역가가 아니었던지라 오역에 대해 온전한 책임을 부여하기 어렵지만, 번역가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오역을 하는 건 안 될 일이다.

 

 

 

덧:

 

버나드쇼의 묘비명에 "우물쭈물..." 을 넣어서 번역한 사례는 KTF show 이전에도 몇 건 발견된다. (댓글을 통해 ㄱㄱ님께서 알려주셨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192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신문자료를 조사해본 결과, 가장 오래된 사례로 검색되는 것은 동아일보의 1984년 2월 11일 자 논평이다. 

 

동아일보 논설위원이었던 김중배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다음과 같이 옮겼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

 

그러나 "우물쭈물" 묘비명은 1980년대에 잠깐 쓰이고,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신문기사 기준 88년 10월이 마지막 사례로 나온다.

 

 

최초의 '우물쭈물...' 사례로 검색되는 1984년의 논평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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