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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ity/기독교: 신앙고백

성경의 관점에서 정치는 누구의 일인가

by Feverish 2021. 11. 30.

예언서를 제외한 구약성경의 대부분은 민족의 정치 지도자로서 등장하는 사사, 혹은 왕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게다가 적과 우리편, 그리고 나와 타인의 구분이 리더의 관점에서 서술되어 있다.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들은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들은 왕권신수설이나 기타 전근대적 정치사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개신교와 천주교 그리고 동방교회를 포함해서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왕과 사사들은 정치적 지도자라기보다는 영적 지도자 혹은 단순히 '신을 두려워하는, 신을 믿는 사람' 정도로 이해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오늘날의 신자들에게 "정치는 누구의 일인가?" "왕이 되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누구의 일인가?" 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화두를 던지는 성경의 구절들이 있기에 나누어보고자 한다.

 



1. 사사기 9장, 새번역 [성서공회 사이트에서 읽기]

하루는 나무들이 기름을 부어 자기들의 왕을 세우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들은 올리브 나무에게 가서 말하였습니다. '네가 우리의 왕이 되어라.'

그러나 올리브 나무는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 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그래서 나무들은 무화과나무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라.'

그러나 무화과나무도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어찌 달고 맛있는 과일맺기를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그래서 나무들은 포도나무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라.'

그러나 포도나무도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 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그래서 모든 나무들은 가시나무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라.'

그러자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정말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너희의 왕으로 삼으려느냐? 그렇다면, 와서 나의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가시덤불에서 불이 뿜어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살라 버릴 것이다.'

 

여기까지 언급된 사사기의 '누가 왕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관점은 플라톤의 <국가>의 제6장에 나오는 정치관과도 일견 비슷해보인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인용하는 소크라테스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를 위해서 철인(철학자)이 왕이되어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에 관해서 6장에서 '항해 비유'를 통해 설명한다. 나는 철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플라톤에 대해서 설익게 언급하기가 주저되기에, 내 멋대로 요약하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에 다양한 자료가 있으니 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를!

 

 

이어서, 바울의 디모데전서에 나오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권고를 소개할 것이다. 이것 역시도, 기독교 신자로서 어떻게 정치를 바라봐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2. 디모데전서 2장, 새번역 [성서공회 사이트에서 읽기]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경건하고 품위 있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이며, 기쁘게 받으실 만한 일입니다.

 

약간의 맥락: 바울이 디모데전서의 이 대목에서 "모두를 위해 기도하라, 특히 지배자를 위해 기도하라" 라고 유별나게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언급하는 이유는, 당시 기독교가 지배층에 의해 탄압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즉, 디모데전서의 맥락은 '강자랑 친하게 지내라'라던가 '권력자에게 아부하라'는 말씀보다는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과 오히려 닿아있다.

 


디모데전서의 바울이 말하는 '왕들과 높은 지위 사람들은' 아래와 같은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 '야훼가 기름부은' 이스라엘의 통치자
  • 왕의 권위가 기독교의 신으로부터 주어졌다고 맹신했던 전근대의 유럽
  • 천자(하늘의 아들)로서 통치자를 이해했던 동양의 맥락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맥락으로 가져오려면 오히려 정조 연간 서학(천주교) 탄압의 맥락에서 "천주교인들은 정조를 위해 기도하세요"라는 말과 같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당시의 천주교인들이 임금을 위해 기도했으리라 믿는다.

 

 

 

 

2007년 대선에서 '장로 대통령' 열풍이 불었던 한 때가 있었다. 또한 한때는 설교단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대통령을 '놈현'이라고 욕하는 것이 유행했던 때도 있었다. 과연 그것이 정말 성경적이었을까? 다시한번 돌아볼 일이다.

 

이미 말할필요 없을 것 같지만, 기독교인의 역할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섬기는 것이다. 예수와 성경의 이름으로 권력자를 옹호지지(endorse)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자가 원수더라도 기도하는 것이다. 자신을 탄압한다고 (혹은 탄압한다는 망상에 빠져서) 교회의 이름으로 '실력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경건하고 품위있고 조용한 삶"을 위해 지배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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